엘든링. 흔히 말하는 소울류 게임과의 첫 만남이었다. 나에게 소울류 게임이란 개같이 어려운 게임을 말하는 다른 단어 같은 거다. '유다희'라는 인터넷 밈이 생각났다. 스트레스를 받으면서 게임을 해야 하나? 그런 생각으로 여태껏 소울류 게임을 피해왔다.
다크소울 시리즈를 한다면 만나게 될 유다희
유다희 밈. 보더콜리로 보이는 강아지가 어둠 속에서 달려 나온다.
하지만 오픈월드 게임이라고 설명한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오픈월드 게임은 무조건 좋아한다. 게임이 이상해도 일단은 장바구니에 담아둔다. 게임 속에서 어딘가를 탐사한다는 느낌은 좋아한다. <젤다의 전설 야생의 숨결> 플레이 이후에 생겨난 새로운 취향이다. 여기저기 쏘다니면서 아이템을 줍고 풍경을 수집하기를 즐긴다.
그래서 엘든링 엔딩을 아직도 보지 못했다. 엘든링 속 세계는 여행을 한다는 나같이 쉬운 마음으로 다녀서는 몬스터한테 뒷목 잡혀 얻어맞기 딱 좋다. 어디 하나 쉬운 초행길이 없다. 지역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하면 어디선가 몬스터가 튀어나와서는 정신 차리게 해 준다.
그래서 나는 엘든링의 세계를 돌아다니는 걸 출장으로 여기기로 했다. 해야 할 일이 있는데 그 일이 더럽게 어렵고 세계는 나에게 무심하며 차갑다. 눈치 보면서 움직여야만 한다.
하지만 또 출장이다. 어쨌든 난 회사 바깥에 나와있다. 평일 시간에 누군가와 미팅을 하고 있고, 리서치 때문에 혹은 영업을 뛰기 위해서 바깥에 나와 있다. 나와 있으니 잠시 숨을 돌려볼 수 있다. 괜찮은 풍경 하나를 건져볼 수 있다. 탕비실에서 먹는 믹스 커피 말고 테이크아웃 카페지만 막 나온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셔볼 수 있다.
이쯤 되니 출장이라는 비유가 맞나 하는 생각도 든다. 게임 하나 하는데 무슨 현생을 생각하나. 몬스터와의 만남도 엘든링 플레이 시간이 깊어지자 즐거움이 되었다. 새로운 장소에서 맞닥뜨리는 긴장감이 스트레스가 아니라 호기심과 두근거림으로 바뀌어갔다.
그렇다면 순례가 아닐까? 나는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어본 적은 없지만, 그 길을 걷는다는 고단함에 대해서는 주변 친구들에게 익히 들어 알고 있다. 왜 저리 고단한 길을 걸을까 생각하면서도 걷다가 만나는 풍경과 사람들의 무용담을 듣자면 공감이 됐다. 일상에서 벗어난, 내가 선택한 이 고단한 길에서 만난 사람들과의 기억, 새로운 풍경과 새롭게 감각하게 된 내 신체(도시에 살면서 발에 물집 잡혀볼 일이 몇 번이나 있을까?) 등등은 분명 매력적이다.
엘든링 속 세계는 삭막하고, 플레이어에게 가차 없다. 심지어 맵을 돌아다니는 플레이어인 나는 고독하다. 하지만 그런 세계 속에서도 놀라운 풍경이 있으며, 게임을 플레이하면서 겪는 여러 감정이 있다. 때로는 짜증과 막막함을 딛고 보스를 잡았을 때 그 희열은 말도 못 하게 크다. 엔딩이 있으니까 언젠가 끝이 나겠지만, 이 삭막한 세계가 어느덧 익숙해지며 이 새로운 역경에 대해 받아 들 일 준비를 항상 하게 된다.
아, 이렇게 나도 망자(소울류 게임을 좋아하는 팬들이 스스로를 부르는 말)가 되는 건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