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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심함이 필요해

심심해서 빛났던, <모여봐요 동물의 숲>

by 우치

심심하다.

심심하다.

심심해서 심심하다.


안 그래도 안 나가던 우리 부부는 코로나 덕분에 더욱 안 나가게 되었다. 원래 집돌이, 집순이였으니 코로나 상황은 그다지 문제가 아닐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일이라도 내가 선택하는 일과 누군가에 의해서 강제가 될 때는 다르다는 걸 깨달은 건 금방이었다.


그런 와중에 온갖 것들이 품절이 나고 웃돈이 붙었다. 그 중에는 <모여봐요 동물의 숲>이 있었다.

모여봐요_동물의_숲_한국어_아트.jpg

2020년 3월 20일에 발매한 <모여봐요 동물의 숲>은 어떤 이들에게는 마치 소꿉놀이와 같은 게임이라기에는 부족한 듯 보이는 게임이었다. 그래도 모바일에 이와 비슷한 게임은 많았다. 숲을 개간해서 그 자원으로 집을 만들고 밭을 가꾸는 등의 게임.


게임 속 '나'는 섬을 가꾸고, 박물관을 채우기 위해서 여러 동물을 채집하고, 또 팔기도 하면서 돈을 모은다. 섬에 친구들은 점차 늘어가고 그들과의 대화를 통해 우리는 일정 수준의 관계를 쌓아나간다. 섬은 지금 현실 시간과 연동되어서 날씨와 그에 걸맞은 활동을 보여준다. 이런 부분에 대해서는 생각보다 디테일해서 어떤 곤충이나 물고기는 야간에 더 많이 채집되는 경우도 있다.


사실 심심한 게임이다. 게임 밖 현실과 연동이 된다는 점은 특이할 수 있다. 하지만 그 놀라움도 잠시다. 금방 익숙해진다. 친구들의 대화도 어느 순간 패턴화 되어있다. 섬의 하루는 거의 비슷하게 흘러간다.


심심하다.

심심하다.

심심해서 심심했다.


하지만 우리 부부에게는 이 게임이 있어 코로나를 견딜 수 있었다. 바깥은 급박했다. 마스크 대란이 나기도 했다. 도시를 봉쇄해야 한다는 말도 돌았다. 누군가는 코로나에 걸려 생사를 넘나들었다. 모두가 서로를 곁눈질하며 의심했다. 사람들은 되도록이면 만나지 않았다. 도시는 멈춘 듯했다. 항상 사람으로 북적이던 명동을 갔을 때 밤 10시만 되었을 뿐인데 썰렁했던 풍경을 잊을 수 없다.


심심함. 게임 속 세계만이 유일하게 심심하며 말도 안 되는 환상적 세계였다. 아직 친절함을 유지하는 세계였다. 사기 치는 여우만 빼면(현실에서의 사기에 비하면 이건 뭐 사기도 아니지) 이 섬은 안전했다. 그 안전함과 친절함이 우리 부부를 위로했다. 잠시 잊은 심심함을 게임을 통해 기억할 수 있었다.


코로나를 겪고 맞이하는 2020년 마지막 날 . 우리 부부는 게임 속에서 게임 속 섬 친구들과 새해 인사를 나누며 마음속으로 모두의 안녕을 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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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월 1일 신년축하 이벤트

그 이후 2022년에 새해 첫날도 함께했다. 그리고 지금 2023년이다.


코로나를 지나 생각해 보면(코로나를 지났다고 할 수 있을까? 아직도 환자가 끊임없이 나오는데? ) 심심하다고 여겼던 일상은 사실 급박했는 지 모른다. 사는 동안 익숙해졌을 뿐. 하지만 지금 2019년만 떠올려도 너무 환상 같다. 이제 곧 2019년은 5년 전이 된다.


지금 일상은 심심하지 않고, 익숙하지 않다. 코로나 이후로는 계속 세계가 가속하고 있는 듯 하다. 이제는 심심해지고 싶다. 자꾸만 섬의 친구들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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