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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이다

퇴근이 아니라면 이 일은 절대 끝나지 않아.

by 우치

지금이야 프리랜서이면서 회사의 대표로 살고 있지만(그래봤자 돈 못 버는 1인 회사 대표......) 나 역시 잠깐이나마 회사를 다닌 적 있다. 남들 다 출근하는 시간에 출근하고, 퇴근할 때 눈치 보면서 퇴근했다.


정말 회사는 출근만으로도 힘이 들고, 퇴근이라는 이유로 신이 난다.

요즘 간간히 'Vampire Survivor'와 그 비슷한 게임인 'Yet Another Zombie Survivor'를 머리를 비운다는 느낌으로 플레이한다. 흔히 '뱀서류' ( Vampire Survivor 와 유사한 게임 규칙을 가진 게임을 통칭해 부르는 말이다.) 게임은 정해진 시간 안에 수많은 적들을 해치우면서 경험치와 아이템을 수집해서 강해지는 걸 목표로 한다. 하지만 점점 감당하기 힘든 숫자로 들이닥치는 몬스터, 적들을 보고 있으면 긴장감에 패드에 잡은 손이 땀으로 젖곤 한다.


그러다가 겨우 살아남으면 파도처럼 해냈다는 마음이 몰려온다. (뭐 이것도 매번 이러진 않지만) 몇 번이나 도전했다가 죽은 경우도 부지기수였다면 이 성취감은 더욱 크다.

Yet Another Zombie Survivor 플레이 캡처

문득 퇴근하면 이런 느낌이었나 싶다. 몰려오는 일(그만 오세요, 몬스터씨)과 갑작스러운 호출(어쩌면 보스몬스터인가!), 손발 안 맞는 동료들(나 이 아이템 왜 먹었니..)을 어쨌든 이겨낸 끝에 맞이한 퇴근이라니. 오늘도 수고했다는 생각이 절로 난다.


그렇게 보낸 하루하루가 쌓인다. 게임 속 레벨 업한 내 능력처럼, 익숙해지는 컨트롤처럼 하루가 쌓인다. 언제부터는 몰려오는 몬스터가 무섭지 않다. 다음 레벨을 위한 수단이다. 하지만 어떤 플레이어들이 도전처럼 성장했던 내 능력을 모두 버리고 시작하면 난 다시 살아남을 수 있을까? 그건 잘 모르겠다. 그래도 게임이니까 잠깐 시간을 버리는 일이겠지만, 현실에서 새로운 분야에서 도전한다면 살아남을 수 있을까? 그건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오늘도 아무튼 살아남았다. 괜히 혼자 비장한 척해본다. 뱀서류 게임을 하는 건 오늘도 살아남은 누군가, 혹은 나에게 보내는 응원이다.


그러니 플레이한다고 눈치 보지 않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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