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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련이 남았다

아직 엔딩을 보지 못한 게임, 창세기전 외전 '서풍의 광시곡'

by 우치

중학생 때였다. 학원에서는 '달란트'라는 포인트를 주곤 했다. 예를 들어 학원에 친구를 소개하면 몇 달란트, 시험 성적이 오르면 몇 달란트. (나중에 대학교 때나 되어서야 이 달란트라는 게 종교적 의미를 가진 개념이었다는 걸 알았지만 학원을 다녔을 때는 그냥 포인트 같은 말인 줄 알았다.)


그렇게 모은 50여 달란트. 학원에서는 그렇게 모은 달란트를 쓸 수 있는 프리마켓을 잠깐 운영했다. 그 장터에서는 떡볶이나 어묵 같은 걸 팔기도 하고, 학용품을 팔기도 했다. 그런 와중에 내 눈에 들어왔던 건 45 달란트의 서풍의 광시곡이라는 게임이었다. 꽤 큰 박스로 있는 게임이라 눈에 확 띄었다.


나는 창세기전 2를 쥬얼팩으로 아버지와 함께 갔던 용산에서 구매했던 적이 있었다. 재밌었다. 그렇기에 그 창세기전의 외전이라는 말에 정보도 없이 덥석 게임을 샀다. 학원에서 게임 패키지를 상품으로 내놓았다는 게 지금 생각으로도 신기하긴 하지만 아무튼 사서 기분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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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당시 국산 게임은 대부분이 PC 게임이었다. 문제는 지금도 그렇지만 게임이 정상적으로 플레이되는 일이 쉽지 않았다는 점이다. 인터넷도 많이 보급되진 않는 시절이라 게임에 대한 정보는 게임 잡지로 얻어야만 했다. 서풍의 광시곡도 맵을 돌아다니다 보면 튕기거나 멈추기가 일쑤였다. (어찌어찌 패치는 깔아서 하긴 했었다.) 그 와중에 맵에서 몬스터는 좀 많이 만나야지. 맵 이동하다 보면 몬스터가 자꾸 튀어나와서 게임 진행은 더디기만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밌었다. 스토리도 스토리였지만 어린 마음에는 각 캐릭터가 쓰는 필살기가 너무 멋있었다. 에너지를 모아서 필살기를 썼을 때 그 연출과 희열은 지금도 기억이 난다. 전작이었던 창세기전 2에서도 필살기랑 서클에서 가장 큰 마법 써보려고 엄청 노력했던 게 생각난다.


하루에 30분에서 1시간? 아무튼 그렇게 부모님께 허락을 맡아가면서 게임을 했다. 하지만 이 정도 시간과 노력으로는 결국 게임을 다 끝낼 수는 없었다. 그리고 버그에 지쳐갈 때쯤 또 다른 게임이 눈에 들어왔다. 무슨 게임이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다만 나는 서풍의 광시곡의 엔딩을 보지 못한다.


그리고 지금 2023년. 게임을 접한 지도 20년이 넘었다. 엔딩은 안다.(심지어 이 게임에서는 엔딩이 3가지다.) 미련이 남는다. 그렇다고 다시 이걸 들고 해볼까 하면 그때의 불편함을 견딜 수 없다. 그렇게 미련이 남아 있다. 완결을 짓지 못한 불편함, 아쉬움 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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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가 요즘 내가 창세기전 시리즈 중에서도 이 게임을 잊지 못하는 건 엔딩을 보지 못했다는 그 마음, 이 미련 때문이지 않을까 싶은 거다. 미련으로 인해서 마음에 남아 계속 그때 기억으로 나를 이끈다. 이끌어간 기억 속에서 나는 시라노가 되어서 맵을 뛰어다니고, 아수라파천무를 쓰다가 튕기면 짜증을 낸다. 그리고 이 이후에 창세기전 시리즈와 얽힌 여러 기억이 떠오른다. (창세기전 3 파트 1 발표회를 가서 티셔츠를 받아왔던 기억이 난다. 연세대학교 100주년 기념관에서 열렸는데, 그 공간이 꽉 찼던 기억이 난다. 일본판 서풍의 광시곡 캐릭터를 보고 좋아 보이면서도 이질감이 들었던 여러 감정이 복잡했던 기억도. 받아온 티셔츠는 해질 때까지 입었다.)


미련은 나쁘다고 생각했다. 지금도 부정적인 마음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기억을 강화시키는 매개체이기도 한 듯하다. 그렇다고 미련을 계속 쌓아나가고 싶은 생각은 없다. 그런 인생을 살고 싶진 않다. 하지만 이 정도 미련이라면 내 어릴 적 기억을 소환하는 강력한 마법진 같은 거라 여기려 한다. 아마도 절대로 잊지 못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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