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별하지 않는다>, 한강
무엇을 생각하면 견딜 수 있나.
가슴에 활활 일어나는 불이 없다면,
기어이 돌아가 껴안을 네가 없다면.
- 한강, <작별하지 않는다> p134
책을 펼치기까지 마음의 준비가 필요한 글이 있다. 일단 마음의 준비를 마치고 들어가면 그 안에서 한동안 머물며 여운을 곱씹게 된다. 오래오래 생각하고 되돌아보게 되는. 한강 작가가 쓴 글들이 내겐 그렇다.
<작별하지 않는다>를 사놓고 일 년 동안 쳐다만 보다 비 오는 연휴에 천천히 읽어나갔다.
우리는 알고 있다, 과거에 입은 상처가 치유되는 순간을. 어떤 순간에 치유되고 가해자와 혹은 과거의 상처와 화해가 가능한지를. 그 화해는 절대 일방적일 수 없고, 피해자가 가해자를 받아들이고 용서할 수 있는 지점에서야 가능한다는 것을. 공권력을 비롯한 역사적 상황에 의해 참혹하게 저질러진 범죄에 대한 용서도 마찬가지다. 피해자들이 스스로 그 아픔과 생을 짓누른 공포에서 벗어나 치유되었다 느낄 때까지 가해자에게 용서를 요구할 권리가 있다는 것을, 우리는 부정할 수 없고 해서도 안된다는 것을.
귀찮고 혹은 돌아보기 불편한 진실이라는 이유로 그 소리를 멈추라 요구할 권리가 제삼자에게는 없다는 사실도.
한강 작가는 글을 쓰고, 그 글을 소리 내어 낭독하며 수없는 퇴고의 과정을 거친다고, 팟캐스트에서 들은 적이 있다. 섬세하고 아름다우면서도 술술 읽히는 문장은 낭독의 과정 때문인가 싶다.
작별할 수 없는 아픈 미망 未忘을 가진 이들과, 같은 시대를 사는 나의 마음과 행동에 대해 책장을 덮고 나서 오래오래 생각해 보게 된다.
#한강 #작별하지않는다
#끝나지않은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