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가까이 일한 스타트업을 퇴사하고 마주한 현실
이 공간에 스타트업 생활을 적어보려 했는데, 퇴사했다! 하하.
그래서 의도치 않게 프롤로그로 적은 두 글에 이어 에필로그가 되어버렸다.
아직도 기억이 나는 11월 어느 날, 출근했는데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깨달았다.
나 많이 지쳤구나. 이제 진짜 그만해야겠구나.
첫 직장이라 내가 지친 건지, 지쳤다면 얼마나 지친 건지, 회사를 관두어야 할 정도인 건지 견뎌야 하는 건지 이 모든 것에 대한 판단이 느렸다. 단단히 지칠대로 지친 다음에야 내 상태를 인지했고, 다음 계획을 생각할 기운도 없이 퇴사했다.
12월 말에 퇴사했으니 어느덧 백수가 된지 한 달 반이다. 퇴사하면 자유로움에 기쁜 마음이 훨씬 클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그 한 달 반이 참 고통스러웠다.
비현실을 살다가 현실에 온 느낌이랄까. 지난 2년 간 현실감각 없이 살았던 나를 마주하는 게 힘들었고 스스로가 미웠다. 내가 현실감각이 없었던 건 크게 두 가지인데
스타트업의 현실을 깨달았다면서 [스타트업의 현실](https://brunch.co.kr/@zoebringsjoy/5) 이라는 글도 썼지만 회사를 나와 외부에서 바라보며 깨달은 건 또 달랐다.
나는 극초기 산업의 아주 작은 스타트업에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 극초기 산업이 세상을 바꿀 가능성에 대해 - 너무 크게 생각했고,
바꾼다 하더라도 그렇게 되기까지 걸릴 시간에 대해 - 너무 짧게 생각했다.
회사 안에 있을 때에는 우리가 꿈꾸는 미래가 너무나 가깝게, 그 미래에서 우리가 해결하고자 하는 문제가 너무나 크게 느껴졌고, 더군다나 첫 직장이었던 나에게는 전부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세상에 다른 종류의 문제들도 많다는 걸 몰랐다. 내가 더 객관적인 시각을 갖추게 되었다 믿었을 때에도 나는 현실과 아주 먼 미래에 가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종종 우리 회사가 대학교 동아리 같다고 생각했다. 다섯명일 때에도 서른명 가까이 될 때에도 우리는 서로에 대해 많이 알았고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으며 힘들게 일했지만 배꼽빠지게 웃는 순간들도 참 많았다. 회사 사람들을 대할 때 마음이 편했다. 경계가 없었다.
그래서 나는 무의식 중에 회사를 회사로 대하지 못했던 것 같다. 일반적인 직장 환경이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내 마음에 선을 긋고 싶지 않았고, 회사가, 그리고 동료들이 나에게 선을 긋지 않기를 바랐다.
그러다보니 내 마음을 너무 많이 주었다는 것을, 회사에 너무 많은 것을 바랐다는 것을, 그러한 마음들이 스스로를 위한 판단에 걸림돌이 되기도 했다는 걸 깨달았다.
이 깨달음들을 바탕으로 앞으로는 더 똑똑하게 행동할 수 있을 거다. 어찌보면 몰랐던 것이 사회초년생으로서는 당연했을 수도 있다. 또 그걸 모르는 순수한 마음 덕에 얻은 것들도 많았을 거다.
다만 안그래도 지친 마음에 세상물정(?) 몰랐던 나를 마주하는 시간이 고통스러웠을 뿐. (사실 여기에 적진 않았지만 개인적인 삶에서도 야무지지 못했던 것들을 마주하는 힘듦도 있었다.)
하지만 회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부딪히고 나아가려고 한다. 며칠 전부터는 더 단단해질 내가 기대가 되기 시작했다. 내가 지쳤던 이유, 삶을 재정비하는 과정 다 차곡차곡 이 공간에 담아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