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경여행가가 되기까지
기회가 있다면 이야기해 보고 싶었습니다.
왜 '배경여행'이란 것을 하고 있는가에 대해
효행 사례 발표대회, 환경보호 사생대회. 초등학생(혹 국민학생) 일 땐 이런 대회가 매년 열리곤 했다. 4학년 때로 기억한다. 늦은 밤까지 정성 들여 써서 제출한 글이 '에너지 절약 웅변대회' 예선을 통과했다는 이야기를 담임선생님으로부터 듣게 되었다. 글쓰기 학원에 다녀본 적도 없고, 또 준비물을 안 가져가도 절대 학교로 가져다주는 법이 없던 엄마는 글을 다듬어 주기는커녕 읽어 보지도 않았다. 매사 자신감이 없던 내가 생애 처음 주목을 받게 된 사건이었다. 웅변대회이니 본선에선 선생님들과 친구들 앞에서 큰소리로 읽어야 했다. 가는 목소리로 땀을 뻘뻘 흘리며 겨우겨우 읽어 내려갔다.
우수상을 받았고, 최우수상을 받은 친구는 학교 대표가 되어 나의 문장을 들고 더 큰 대회에 나갔다. 그땐 그게 뭔가 잘못되었단 자각도 없이, 작은 나의 목소리를 탓하며 엄마를 졸라 웅변학원에 다녔다. 그때부터 글 쓰는 일을 하고 싶어 아나운서란 꿈을 키우며 언론정보학과에 진학. 학과 수업을 듣다 보니 아나운서는 글보다는 말을 더 잘 해야 하는 직업이었다.
아뿔싸.
학과를 잘 못 선택한 것 같다.
방향을 틀어 기자를 준비했다. 3학년 땐 한 시사 잡지사에서 인턴기자를 하며 경험도 쌓았다. 일본어를 할 줄 안 덕에 인턴기자 신분으로 일본 출장까지 다녀왔다. 그때 처음으로 써본 여행 기사는 현직 기자 선배들이 재미있게 잘 읽었단 칭찬을 해준 유일한 기사였다.
그렇게 순탄히 기자가 될 줄 알았는데, '언론고시'라고까지 불리는 신문사 입사시험의 장벽을 넘어서지 못했다. 언제까지 백수로 지낼 수 없다며 들어간 곳이 백과사전 회사였다. 기사는 아니지만 ‘글을 쓸 수 있는 회사겠지’란 생각에 입사했다. 그러나 기업에 소속된 백과사전 팀인지라 직접 글을 쓰는 일보단 다른 업무가 산더미 같이 쌓여 있었다. 가끔 글을 쓰기도 했지만 백과사전 형식에 맞춰 쓰는 차갑고 건조한 문장이었다. 틀에 정보를 끼워 넣는 일에 가까웠다. 물론 직접 자료조사나 취재에 나서는 일도 많아 국내외를 많이도 다녔다.
막연하게 쓰고 싶었던 무언가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입사 후 3년 정도 지났을 때, 아직 백과사전에서 많이 다루고 있지 않은 일본의 도시를 찾아 자료 수집을 하러 가게 되었다. 출장을 가기 전엔 어떤 표제어가 사전에 등재되어 있지 않은지 조사를 하고, 일정을 계획한다. 나고야에서 출발해서 비와호 주변 소도시를 훑고, 하마마쓰란 도시에 들렀다가 도쿄 도서전을 보고 돌아오는 일정을 짰다. 출장에서 돌아와서 도쿄 바나나를 팀원들에게 돌리는 데 한 동료가 나에게 지나가는 말로 물었다.
"하루키 신작 보고 일정 짜셨나 봐요?"
"…… 엥? 하루키 신작 나왔어요?"
무라카미 하루키 팬임을 자처하는 내가 신작이 나온 사실을 몰랐다니. 일단 마음이 상하고 봤다. 게다가 매우 성대하게 출간 소식을 알렸는데!
"아주 난리던데요? 슬쩍 봤는데 출장 기안에 적으신 도시랑 소설에 등장하는 도시가 완전히 일치해서 읽고 다녀오신 줄 알았어요."
퇴근길에 곧장 광화문 교보문고에 가서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를 서서 읽기 시작했다. 다섯 명의 친구가 등장하고 이들은 나고야 출신. 주인공 다자키 쓰쿠루는 도쿄에 있는 대학에 진학한다. 도쿄에 있는 쓰쿠루를 빼고 네 명의 친구는 비와호 여행을 가기도 한다. 피아노를 치는 시로는 하마마쓰에 가서 학원 선생님이 된다.
이 우연의 일치 덕분에 나는 이제까지 막연하게 쓰고 싶었던 글이 무엇이었는지 찾게 되었다. 그리고 '책, 영화, 드라마 속 그 곳, 그 맛, 그 말'이라는 홈페이지를 하나 만들어 그곳에 여행기를 올리기 시작했다. 처음엔 책의 배경이 되었거나, 영화나 드라마 촬영지면 무조건 소재가 되겠다 싶었는데, 작품이나 장소에서 큰 감동을 느끼지 못하고 쓰면 글이 시시해졌다. 그래서 일단 마음에 남은 '작품 속 그곳만 써보자!’ 란 생각으로 하고 있다. 책, 영화, 드라마를 계속해서 봐야 하고 배경에 가보고 싶은 마음이 들어야 하고, 여행을 계획해야 하고, 다녀와서 글과 사진을 정리하고 때때로 그림까지 그린다. 요즘 같은 시대에 빠릿빠릿하게 할 수 있는 일은 못 된다.
그래도 나는 스스로 ‘배경여행’이라 이름 붙인 여행에 푹 빠졌고, 좋은 작품을 만나면 엉덩이가 근질근질해져 견딜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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