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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onee Aug 02. 2017

잠이 오지 않는다. 벌써 세 시.
출근해야 하는데…

- 책을 쓰기 시작한 첫 일주일


이번 기회를 놓쳐버리면
다시 안 올 것 같아서 잡아버렸다.


출간 계약서에 날인을 하고, 등기우편으로 부칠 때까지만 해도 나는 잔뜩 꿈에 부풀어 있었다. 베스트셀러 리스트를 보며 이 안에 내가 낼 책이 올라있는 상상을 했고, 출간 이벤트라도 연다면 ‘어떤 옷을 입어야 여행 작가 느낌이 날까’ 고민했다. 


책에 넣을 원고를 다시 쓰는 작업이 시작되었다. 나는 허황된 상상 속에서 지냈던 지난 며칠을 매우 부끄러이 여기며 매일매일 깊이  깊이 절망했다



책 집필을 시작한 첫 일주일.
나의 밤은 대략 다음과 같았다.



퇴근을 한다. 저녁을 먹는다. 밤 9시, 10시 정도가 된다. 모아둔 여행기를 다듬기 시작한다. 한 편도 다 다듬지 못했는데 자정이 된다. 첫 문장부터 다시 읽는다. 매력이 없다. 문장들이 제각기 날뛰는 것처럼 보인다. 흩어진 문장을 한 마리 잡아 읽어 본다. 한심한 문장이다. 노트북을 닫는다. 책장으로 향한다. 다른 여행 작가의 책을 꺼내 든다. 수십 장이 술술 넘어간다. 재미있다. 문장도 깔끔하다. 부럽다. 


아… 큰일이다. 책을 쓸 수 있을까. 

걱정이 되어 잠이 오지 않는다. 벌써 세 시다. 



밤을 꼴딱 새우게 만든 책도 있었다. 내가 계약한 출판사에서 나온 에세이. 나는 계약 후 책장의 한 칸을 모두 출판사 꿈의지도의 책들로 채워두었는데, 그중 한 권이었다. 


생각해보면, 나의 출간 계약 과정은 원칙을 좋아하는 모범생과 같은 길이었다고도 할 수 있다. 과정 안에는 엄청난 뜻밖의 행운도, 눈물 없이 볼 수 없는 고난한 이야기도 담겨 있지 않다. 올해 초 블로그에 올린 '설국' 여행기가 유독 큰 주목을 받았고, 덕분에 막연하게나마 꿈에 그리던 책 출간에 근접해가기 시작했다. 여행기는 포털사이트 메인 페이지에 몇 차례 올랐다. 그러자 출판사 몇 곳으로부터 출간 제안 메일이 들어왔다. 책을 내보고 싶었지만 출간을 할 만한 글인가 자신이 없었던 나는 메일을 받으니 기대가 생겼다. 한 가지 욕심도 부리고 싶어 졌다. 여행 에세이를 출간한 적이 있는 출판사에서 책을 내고 싶었다.




거창한 이유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출간의 과정을 통해 여러 가지를 배워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문장을 어떤 방향으로 수정해 가는지, 본문 구성은 어떻게 해야 매력적인지, 출간 마케팅은 어떤 식으로 진행하는지 등. 책이라는 것을 처음 내보기 때문에 많은 것이 궁금했다. 여행 에세이를 처음 내는 출판사와 일을 하게 된다면 세세한 부분을 배우기 어렵지 않을까 걱정이 되었다. 아쉽게도 제안을 받은 출판사 중에는 여행 에세이를 출간했던 곳이 없었다.




서점에 가서 나와 비슷한 결의 글이 담긴 책을 찾았다. 그 책들을 낸 출판사를 리스트업 했다. 몇 곳에 기획안(* 5화에서 공개합니다!)과 샘플 원고를 첨부하여 투고했다. 대부분의 출판사가 친절하고 정중한 답변을 보내주었다. '편집 회의 결과 출간을 하지 않기로 결정했다'는 회신이었다. 그러다 어느 한 출판사로부터 '우리 출판사에서는 낼 여력이 없으나, 친한 편집자에게 기획안을 보냈으니 답변을 기다려보라'는 메일을 받았다. 나는 그 친한 편집자의 회신을 기다리고 있던 중 꿈의지도란 출판사로부터 '함께 책을 만들어 보자'는 희보를 듣게 되었다. 그렇게 꿈의 지도와 연이 닿게 되었고, 계약서에 도장을 찍었다.




비가 내리던 프로방스 아비뇽


아비뇽의 새벽


다시 첫 일주일의 밤으로 돌아와서. 

원고를 쓰기 시작하며 잠도 못 자고 출근을 하게 만든 책은 배종훈 작가의 ‘유럽을 그리다’였다. 나는 새벽에 꺼내 든 이 책을 단숨에 읽어버렸다. 마지막 장을 넘기자 아침 해가 떠오르고 있었다. 나와 같은 도시를 다녀온 작가. 그에겐 정말 매력적인 이야기가 있었다. 그는 남프랑스로 향하는 비행기에서 한 여자를 만났고 동행이 되었다. 반면 나의 여행기 안엔 바캉스 로맨스 따위 생길 리 없는 동행, 여동생이 있다. 다른 데에선 매력적인 여성인지 모르겠지만 내 글 안에서 동생은 비를 맞고 낄낄 웃고 있을 뿐이었다.



사흘을 아비뇽에 머물며 한 차례 갑작스러운 장대비를 만났다. 속옷까지 모두 젖었다. 다른 사람들은 모두 상점 난간에 서서 비가 그치길 기다리고 있었다. 서둘러 호텔로 뛰어가는 사람은 나와 내 동생뿐. 모두들 우리를 쳐다보았다. 온몸이 다 젖어 방에 도착해서는 서로의 모습을 보며 낄낄 웃었다.
 ‘무엇이 그리도 급해서 서둘러 왔을까?’ 

- 다정한 여행의 배경 (가제) 중에서





나는 책을 쓰기 시작한 첫 일주일의 밤을 지새웠다. 남의 여행과 문장들을 흠모하고 질투하다가, 한 편 글도 제대로 고치지 못한 채.



첫 책을 쓰는

일주일의 

밤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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