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minseok oh
Dec 21. 2019
반복된 마주침 / 인물들
Planer Jour Fix
목요일 아침은 여유가 있다.
주차전쟁을 치러야 하는 평일에는 꼼짝없이 딸아이를 유치원에 데려다주고 아침을 거른 체 회사로 향해야 한다.
Planer Jour Fix(정기적 플래너 회의, 보통 큰 건축 프로젝트의 경우 주간으로 한다)가 있는 목요일은 딸아이를 유치원에 데려다주고 다시 집으로 들어와 이미 출근한 아내의 눈치 없이 라면을 끓여먹고 평소보다 느지막이 바로 공사현장으로 향한다. 이런 여유는, 사무실보다 더 도심 한가운데 있는 공사현장이지만 되려 주차자리 찾기가 수월한 덕택이다.
Planer Jour Fix에는 보통 건축주, 건축가, 구조 엔지니어, 설비 엔지니어, 소방 엔지니어, 조경건축가 등등이 참여한다. 우여곡절이 많았던 이 프로젝트는 예외적으로 공조, 배관, 전기, 스프링클러 시공사도 참여한다.
일주일에 한 번씩 얼굴을 맞대는 이 회의가 지속되다 보니, 처음엔 그저 업무적인 인사나 의사소통만 했던 것에 반해 조금씩 그들의 인간적인 모습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마치 군대에 다시 던져진 느낌이랄까...
잠깐 진행 중인 프로젝트에 대해 설명하자면, 기존에 오피스로 쓰였던 두동의 고층건물을 각각 주거와 호텔로 용도를 변경하는 프로젝트이다. 덧붙이자면, 현재 이 주거시설은 프랑크푸르트에서 제곱미터당 가장 비싸며, 호텔은 5성 플러스 급의 호텔이다. 당연히 건축주의 요구는 높지만 애초에 오피스로 계획된, 그것도 지금과는 다른 건축법과 조례로 지어진 건물에 건축주의 요구를 담는 것은 무척이나 어렵다. 더욱이 유럽의 소방법은, 특히 고층건물의 소방법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복잡하며 거의 모든 건축적 시도에 소방방식에 대한 검토와 허가의 단계를 추가시킨다.
우리 모두는 동일한 숙제를 떠안고 매주 얼굴을 붉히면서도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 존재들이다.
앞으로 이 회의에서 만난 사람들에 대한 내 인상과 느낌들을 기록해 보려고 한다.
이 행위의 분명한 목적은 없다.
뭔가 조금 감동스럽게, 차가울 것 같았던 독일이인에 대한 이면의 따스함을 적게 될 수도 있을 듯하고, 어쩌면 독일인들의 삶이나 우리 한국인들의 삶이나 크게 다를 바 없음을 적을 수도 있을 것 같다. 물론 생각했던 그대로의 독일인에 대한 편견을 확고히 하는 경우도 있을 듯하다.
매주 30명 정도의 인물들을 반복하여 마주치며, 이야기하며, 심지어 목요일인 아닌 날엔 전화통화나 이메일로 소통하며 알아가게는 그들의 모습들을 기록해 보고자 한다.
이는 내 안에 있던 스스로의 빗장을 열고 마주한, 어쩌면 독일 생활 13년 만에 비로써 처음으로 만나게 된 독일인들에 대한 내 기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