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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m Dec 06. 2023

절이 싫어도 중이 못 나가.

근무 일기

언제부터지.

같은 사무실을 쓰는 입사 3년 차 후배 유걸과 박 부장은 데면데면했다.

출근 인사 패스는 물론 복도에서 만나도 대놓고 시큰둥이다.

심지어 오늘은 투명인간 취급에 이르렀다.

복날에 쿠폰도 보내주고 가끔이지만 점심도 사주는 사이였는데...

이런 경우는 딱 한 가지다. 불만이 많아 퇴사를 결심한 상태.


"유걸. 지금 잠깐 휴게실로 내려와 봐."

사내 메신저로 글을 보냈다.


업무상 부서 간 갈등으로 귀 고막을 막고 싶다.

돌고 돌아 내 험담이 나에게 온다.

열심히 해도 본전이다.

그리고,, 기준이 없는 급여체계가 너무 불안하다.

거기에,, 가끔 출근하는 대표의 화려함에 허무해진다. 명품옷과 구두에 커다란 외제차는 많지도 않은 사기를 충분히 떨어뜨린다. 직원들 급여 10만 원 인상도 아까워 온갖 이유를 다 내놓으면서 진심 나쁘게 보인다. 여직원들 많은 회사에서 무슨 짓인지 너도나도 속닥거린다. 

라며 유걸은 털어놓았다.


직원으로서 충분히 가질 수 있는 생각이므로 체계적으로 공감했다. 어떤 이유를 붙여도 변명으로만 들릴 것을 알기에 "그렇구나"로 일관했다.

선배로서 해줄 수 있는 일은 맛있는 밥 한 끼 사주는 게 전부라 판단했고 니들이 좋든 싫든 저녁 먹으며 이야기 나누자며 날짜를 잡으라는 미션을 안겼다.

나 또한  불합리한 대우를 넘치게 받고 있지만 선배이기 때문에 드러낼 수 없다.

결론이 없는 이야기에 고개를 끄덕여 주는 것만으로도 후배들은 고마워한다.



어느 날 툭 던져진 법인 차량으로 장거리 출퇴근을 하는  박 부장은 회사 매출이 줄었다는 이유로 한 달 20만 원도 되지 않는 주유비를 개인 카드로 사용 중이다.

심지어 어제는 차량 점검과 엔진 오일 교체 건으로 기업 카드를 신청했으나 차량 일지를 작성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지원할 수 없다며, 그것도 부족한지 사내 규정 미준수 시 반납하라는 명령까지 떨어졌다.

어느 한 부분도 공감할 수 없는 대목이다.

규정을 떠나 사무실 에티켓도 지킬 줄 모르는 어쩌다 이사가 박 부장에게 할 말은 아니지 싶다.


아침에 눈 뜨면 "오늘은 사직서를 낼 거야"를 다짐하며 출근한다는 유걸. 직속 후배를 생각하면 쉽게 그만둘 수 없다며 책임감 없는 선배가 되고 싶지는 않다며 그럴싸한 겉치레로 자신을 포장한다. 아니다 절대 아니다. 그런 애사심 따위가 우리에게는 없다.


그저 먹고살아야 하니까 그만두지 못하고 버티는 거다.

자식들을 가르치고 여행도 다니면서 맛있는 음식도 사 먹어야 하니까 기어 나오는 거다.

절이 싫으면 중이 나가야 맞지만 맞지 않는 이야기다.

꼭 그래야 하는 것은 아니다. 싫어도 나가지 못하는 그 맘도 있는 거니까.

니미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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