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밥 일기
굽거나 찌거나 조리거나.
오늘도 밥상에 생선 한 마리.
여행으로 도착한 낯선 도시에서 부부는 늘 재래시장을 찾는다.
동해는 동해대로 남해는 남해대로 말린 생선 한 소쿠리가 여간 값지지 않다.
깔끔하게 손질된 간고등어는 제주가 최고다.
살짝 기름 두른 팬에 앞뒤 노릇 구워 일요일 아침 아들 밥상을 차리는데, 좋아하는 흑미밥에 멜론 한 조각과 갓 담은 배추김치로 녀석의 늦잠을 방해해 버린다.
조리다.
안양 중앙 시장의 빨강 떡볶이가 사무치게 먹고 싶던 날.
제철을 맞았다는 갑오징어와 언제 먹어도 같은 맛이 나는 동태를 담아왔다.
볶음 양념은 물론이고 간장이나 초고추장도 필요 없는 갑오징어는 살짝 데쳐 본연의 맛만 즐겨도 충분하다.
흰 살 덩어리 얼린 동태는 깨끗하게 씻어 무와 함께 조림을 한다.
李가 두 명과 성이 다른 朴가는 밥상의 생선 앞에서 대동단결이 난리도 아니다.
우리의 가족애가 언제부터 이러했던가.
가시를 조심하라고. 아빠가 발라준다고. 이거 먹어야 단백질이라고, 다리도 먹어보라고...
찌다.
부산의 자갈치 시장에 가면 곰장어도 맛이 있지만 박대가 또 그렇게 크고 좋을 수 없다.
반건조로 잘 말린 박대를 어느 날에는 기름에 굽고 어느 날에는 찜통에 찐다.
조리법에 따라 확연하게 달라지는 맛이 생선을 끊을 수 없는 유일한 이유다.
그렇다고 레시피가 번거롭거나 어렵기나 한가.
부드럽고 야들야들 쪄진 박대는 맛술과 고추만 뿌렸을 뿐인데 가치를 다했고 앞뒤 노릇하게 구워 라임을 뿌린 박대는 밥도둑이 따로 없다.
굽다.
울산의 방어진 시장. 민어 조기가 있다.
너무 흔하고 조기보다 맛이 덜해 쳐다도 안 봤다는 그 지역 사람들의 대우는 모르겠고, 가시까지 꼬숩고 버릴 것이라고는 뼈밖에 없을 정도로 모든 부위가 특별하다.
9월 중순이 되면 단골집의 말린 가자미도 기다려지는 대목으로 3년째 택배로 배송받아 요긴하게 밥상에 올린다.
혹시
'돈도 없는 게 알지도 못하면서 자존심은 있어가지고'의 쓰리콤보를 들어본 적 있는지 묻고 싶다.
줄 것도 아니면서 있는 척하고, 가르쳐 줄 실력도 안되면서 아는 척하고, 자존심이 뭔지도 모르는 그 영혼에게 말하고 싶다.
조리고 굽고 쪄서 먹는 삼박자 쓰리콤보로 네 밥상이나 신경 쓰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