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하루의 기록에서 시작된 이야기
나는 노트를 꺼냈다.
줄 없는 종이, 구겨진 모서리, 검은 잉크.
그곳에 단 한 줄을 썼다.
“물이 입 안에 머무는 시간이 따뜻했다.”
그건 다짐도 아니고, 버킷리스트도 아니었다.
그저 살아 있다는 감각을
다시 한 번 붙잡고 싶어서였다.
언제부터였을까.
눈을 떴다는 사실만으로도
하루를 견뎌낸 것처럼 느껴진 게.
방 안의 공기는 고요했다.
누군가 어제 창문을 닫아두었고,
나는 오늘도 그 창문을 열지 않았다.
움직이지 않아도 되는 날이었다.
하지만 물을 마시기 위해
나는 천천히 일어났다.
텀블러에 물을 따르고,
입술이 유리컵을 스치는 감각을 느낀다.
찬물이 목을 타고 내려가는 그 순간,
잠시 동안 내가 살아 있음을 느꼈다.
손끝에서, 혀끝에서,
그리고 심장 아래 어딘가에서
아주 조용히.
이건 회복이 아니다.
그저 ‘살아 있음’에 대한
작은 표식 하나를 남기는 행위.
나는 다시, 한 줄을 썼다.
“오늘, 숨을 다시 들이마셨다.”
그 문장이
나를 살게 했다.
살고 있다는 느낌이 아니라,
살아야만 한다는 자각
무언가가 바뀐 건 아니었다.
단지,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도
하루가 지나가고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조금은 괜찮다고 믿고 싶었던 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