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저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오늘은 한동안 비워뒀던 문장을 다시 꺼내 적는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아무것도 쓰지 못했다.
몸은 움직였지만, 마음이 머무는 구석이 없었다.
그저 커튼을 젖히고, 창문을 여는 데까지가 전부였다.
그 이상은 어떤 말도 닿지 않았다.
창밖엔 변한 것이 없었다.
어제와 같은 나무, 같은 줄기의 그림자,
같은 방향으로 흘러가는 구름.
그런데 오늘은 그 풍경 안에서
무언가가 나를 조용히 불러세웠다.
햇빛이 나뭇잎을 비추는 각도 때문이었을까.
바람은 불지 않았지만,
그 나무는 아주 느리게 움직이고 있었다.
가만히 서 있는 것 같았지만
어쩌면 늘 조금씩 흔들리고 있었던 건지도 모른다.
내가 미처 보지 못했던 시간들 안에서.
나는 갑자기 그 나무가
나를 향해 말을 걸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슨 말을 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저 그 자리에 있는 것만으로
“괜찮다”는 말을 대신하고 있다는 느낌.
움직이지 않아도, 대답하지 않아도,
살아 있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말해주는 어떤 기척.
그래서 오늘은
그 장면을 조용히 종이 위에 붙잡아두고 싶었다.
이건 내게 주어진 하루를
사라지지 않도록 남기는 방식이다.
누군가는 그것을 일기라고 부를 테지만,
나는 이것을 살아 있다는 증거로 삼는다.
내일은 다시 아무 말도 쓰지 못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오늘만큼은
“나무가 말을 걸어왔다”는 이 기록 한 줄로,
내가 존재했음을 남길 수 있을 것 같다.
창문을 닫고, 펜을 내려놓는다.
그리고 아주 조용히
오늘의 마지막 숨을 쉰다.
말을 하지 않아도,
어떤 존재는
그저 거기 있음으로써 말을 건넬 수 있다는걸.
난, 그걸 오늘 처음 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