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 일도 없었지만 무너졌다

- 소리 없는 무너짐에도 기록은 남는다

by SH

어제의 문장을 다시 꺼내 읽었다.

“난, 그걸 오늘 처음 알았다.”


지금 보면, 그건 다짐이라기보단

작게 속삭이듯 남긴 말이었다.

어디에도 닿지 않을 것 같은

나만 아는 문장.


하지만 오늘은

그 한 줄조차 쓰기 어려운 하루였다.


별다른 일은 없었다.

평소처럼 물을 마시고,

아침을 넘기고,

햇빛이 창틀에 닿는 걸 한참 바라봤다.


그러다

문득 숨을 놓쳐버렸다.


무너지는 데는

거창한 사건이 필요하지 않다는 걸

나는 오늘 처음 체감했다.


식탁 위 컵 하나가 돌아앉아 있었고,

전화기는 아무 알림도 없었고,

수건은 어제처럼 개어져 있었는데,

몸 안 어딘가가

그 조용한 풍경 속에서 스르르 내려앉았다.


눈물이 났는지,

그저 졸린 건지 모르겠다.

감정이라는 게 때로는

그 자체로 무게가 되기도 하니까.


오전에 접어둔 메모장은

저녁이 되도록 펼치지 못했다.

어떤 말도, 어떤 문장도

오늘의 이 공백을 채우지 못할 것 같아서.


그래도

아무것도 쓰지 않으면

내가 오늘을 살아냈다는 사실마저

없어질 것만 같았다.


그래서 이 기록을 남긴다.


오늘, 아무 일도 없었지만 무너졌다.

그럼에도

이 문장을 마지막에 붙잡았다는 걸로,

나는 오늘을 살아냈다고 믿고 싶다.


무너진 하루를 기록하는 것도,

살아 있다는 증거가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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