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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낱 Dec 10. 2021

*나는 반찬 통이로소이다

   

 저는 반찬 통이에요.

 그것도 뚜껑 네 면에 잠금장치가 있고 고무 패킹으로 둘러져 있어요.

 일명 ‘락앤락형 반찬 통’  

 주인이 제일 씻기 귀찮아하는 식기죠.     

 생각해 보세요. 아무래도 그렇죠.

 저의 울퉁불퉁 튀어나와 있는 잠금장치를 구석구석 수세미로 닦아야 하죠.

 게다가 밀폐력을 높이려고 넣어 둔 고무 패킹은 조금만 소홀히 해도 금방 곰팡이가 쓴다네요.     

 

 주인은 기본적으로 설거지를 싫어해요.

 물론 이 집 저 집 돌고 돌아다니는 떠돌이 반찬 통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설거지를 좋아하는 사람은 없구나 싶어요. 그래도 그렇지 주인은 저를 씻는 걸 너무 귀찮아해서 제가 섭섭할 정도예요. 사실은 저도 다른 집에 있다가 온 반찬 통이에요. 하지만 저는 떠돌이는 아니에요. 새 주인은 저를 다시 다른 곳으로 보내지는 않더라고요.      

 

 주인은 설거지할  기본적으로 아주 매끈한 그릇들을 좋아해요. 옆에서 제가 씻겨질 차례를 기다리며 지켜보다 보면   있어요. 깨지기 쉽다면서 제일 먼저 씻는 유리컵들을 제외하면 항상 그릇의 테두리가 깔끔하고 단순한 그릇들부터 씻더라고요. 약간 얕고 옴폭한 그릇들을 좋아하는  같아요. 왼손에 쥐고 오른손으로 수세미를 문질러야 하니까 그립감도 좋아야 한다며 남편에게 흥분해서 말하는  들은 적이 있어요. 그날  그릇이 들어왔는데 그립감이 좋다며 신나 하더라고요. 섭섭했어요.  그래도 이젠 어느 정도 적응했어요. 냉장고 안의 다른 친구들과 이야기해 보니 모두 같은 처지더라고요.

 


 특히나 싫어하는 그릇들은 손이 들어가지 않는 컵이나 텀블러, 여러 칸으로 나누어져 있는 식기나 식판류, 그리고 올록볼록 여기저기 튀어나온 뚜껑을 가진 네모난 반찬 통들. 이 중 네모난 반찬 통은 바닥과 옆면이 직각으로 만나기 때문에 손가락 끝으로 수세미를 문질러야 하나 봐요. 그래서 손가락에 힘이 꽉 들어가 있는 게 느껴져요. 한 번씩 손가락을 오므렸다 폈다 하는 걸 보면 확실히 그런 것 같아요. 저는 이렇게 씻기 힘들고 성가시게 생겼으니까 자꾸 설거지 순서에서 밀리기 일쑤예요.      

 

 하지만 저도 억울해요. 제가 뭐 이렇게 생기고 싶어서 이렇게 생겨났겠어요?

 고무 패킹으로 공기를 차단해 진공 기능을 하니까 남은 반찬이나 정성껏 만든 음식들이 상하지 않는 것 아니겠어요? 확실하게 공기를 막아주고 속에 담긴 내용물이 흐르지 않게 하려면 당연히 잠금장치가 필요한 거 아니겠어요? 저도 꼭 필요해서 이런저런 것들을 주렁주렁 달고 태어났다고요. 사용할 때는 편리해서 써놓고 설거지할 때는 투덜거리니 저도 속상하다고요.     

 

 지금 주인 흉을 조금 봤더니 전 주인이 갑자기 생각나네요.

 전 주인은 아주 깔끔쟁이였어요. 손도 크고 음식도 뚝딱뚝딱 재빨리 해내는 사람이었어요. 생강을 아주 곱게 갈아 오랫동안 고아서 생강청도 만들고 각종 장아찌도 겁 없이 만들었어요. 멸치를 볶을 때는 영양을 생각해 반드시 각종 견과류를 넣어 볶아 넣어줬어요. 요리를 잘하던 전 주인은 제 뚜껑을 씻을 때 신경질적으로 고무 패킹을 빼냈어요. 포크로 찔러대며 빼내는 바람에 찢어질 뻔한 적도 있었어요. 그래도 그때는 참 깨끗했답니다.     

 

 전 주인이 정성껏 만든 반찬을 저에게 담아 지금 주인에게 주었어요. 마치 멀리 사는 친정엄마가 챙겨주는 것 같다고 엄청 고마워하더라고요. 같은 동네에 사는 친구인 것 같았어요. 왜 있잖아요. 동네 절친. 그런데 그 선물을 받은 새 주인은 실컷 먹고 나서도 씻기 귀찮은 반찬 통이라며 설거지 순서에서 한참 미뤄두었어요. 아니, 친정엄마가 생각날 정도로 고맙다면서 반찬 통을 씻기 귀찮아하는 게 말이 되나요? 제 입장에서는 이해가 안 돼요. 하지만 어쩌겠어요. 제가 제 몸을 직접 씻을 수도 없고. 예전 주인에게 사랑받던 게 생각나서 엉엉 울고 싶었어요. 그렇다고 실제로 울지는 않았어요. 저는 성숙한 반찬 통이니까요. 지금 주인이 무언가를 담아 돌려주어야 한다고 중얼거리는 소리를 들었어요. 빈 그릇을 돌려주는 건 예의가 아니래요. 저는 오늘도 전 주인에게 돌아갈 날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어요. 제 고무 패킹이 찢어지더라도 반찬 냄새가 제 몸에 배이기 전에 깨끗이 씻어주는 전 주인이 보고 싶어요. 떠나고 보니 전 주인이 얼마나 고마운 사람이었는지 알게 되었어요. 언젠가 고향으로 돌아갈 날이 오겠죠?                


*제목은 나쓰메 소세키의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에서 빌려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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