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거대한 역사를 품은 작은 행복의 나라
<대만 - 거대한 역사를 품은 작은 행복의 나라> .
저자는 대만에서 생활을 오래 하기도 했고 지금도 꾸준히 대만에 대해 공부해 오고 있다. 저자는 우리가 일본을 가깝고도 먼 나라로 많이 꼽지만 대만이야말로 가깝고도 먼 나라라고 했다. 그러고 보니 대만에 대해서는 일본의 10분의 1만큼도 모른다.
생각해보면 1992년 대만과 단교하기 전까지는 중국보다 훨씬 가까운 나라였다.
대만과 단교할 때 TV에서 한국에 있던 많은 대만사람들이 눈물을 흘리는 장면을 봤던 기억이 난다.
이 책을 읽으며 '맞아, 옛날엔 그랬었지'라며 지난 시간을 떠올려 보기도 했고 새삼 냉정한 국제질서와 외교에 생각하게도 됐고 가까운 나라인데도 대만에 대해 이렇게나 잘 몰랐구나 싶기도 했다.
물론 책 한 권으로 얼마나 알 수 있겠냐마는 대만에 대해 다각도로 알게 되는데는 많은 도움이 됐다.
한번도 깊이 생각해보지 못했던 대만의 국제법적 위치에 대해 정확히 알게도 됐다. 대만은 국제사회로부터 주권국가로 외교적 승인을 받지 못했거나 아주 제한적으로 외교적 승인을 받고 있는 국제법상 '미승인국가'이며 일부 국제연합 회원국에서만 승인을 받은 국제연합 비회원국이다.
이는 1955년 중국 저우언라이가 인도네시아 반둥회의에서 제창한 '하나의 중국'원칙에 의해 대만은 '중국의 나눌 수 없는 부분'이라는 원칙에서 물러서지 않고 있기 때문이기도 한데 대만 역시 장제스-장징궈 시절의 '한적불양립'원칙에 의해 공산비적에 불과한 중공을 인정할 수 없다는 원칙을 견지해오고 있다.
결국 서로 상대를 인정하지 않는 것인데 국력의 차이가 갈수록 벌어지면서 대만의 입지가 좁아진 것이다.
대만과 중국은 2010년 '양안간경제협력기본협정'을 체결해 '선경제 후정치'원칙에 합의했다.
한국과의 오랜 우호관계
대만은 한국과 혈명 혹은 형제의 나라라고 불리던 우호관계에 놓여 있었다. 1945년 일본 패망 3년 후 성립한 대한민국정부를 세계에서 두 번째로 승인한 것도 중화민국정부였고, 1949년 설치된 주중화민국대한민국대사관은 대한민국의 첫 번째 재외공관이었다. 1950년 한국전쟁 발발후 냉전시기를 거치면서 한국과 대만은 아시아 반공전선의 보루로 혈맹의 인연을 이어갔다. 그러다 1992년 한국이 중국과 수교함으로 인하여 대만과의 공식 외교관계는 끝났다.
대만과의 단교 과정에서 한국의 태도는 아쉬움이 많다. 한국정부는 불과 3일 전에 대만과의 결별 사실을 통보하고 당시 명동의 대만대사관도 3일만에 비우라고 요청했다.
2008년 이명박 대통령 취임식 때는 "대만측 사절단이 참석할 경우 대표단을 철수시키겠다"는 중국의 압력에 굴복해 대만측 사절단을 쫓아 내기도 해 큰 파문을 일으켰다고 한다.
외교가 쉽지는 않겠지만 대만을 대했던 한국의 태도에는 아쉬움이 크다.
대만의 안보관광지 진먼도
이 책을 읽고 가보고 싶어진 곳은 진먼도(金門島)다. 진먼도는 대만정부에 의해 대대적인 '요새화 공사'가 진행돼 섬 전역을 거미줄처럼 잇는 지하 요새가 건설되었다고 한다.
이렇게 만든 일의 계기는 1958년. 중국과 대만의 신경전으로 중국은 무려 40만 발의 포탄을 그야말로 융단폭격했고 (기네스북에 오를 정도로 많은 포탄이라고 한다.) 미국은 장제스에게 방어에 불리하단 이유로 진먼도 포기를 권유할 정도였다. 하지만 장제스는 포기하지 않고 응전을 했고 오랜 시간 포격을 해댔다. 물론 시간이 지나면서 중국의 포격은 느슨해졌지만 1979년 미 중 수교때까지도 포격이 계속되었다고 하니 한마디로 징한 곳이다.
실제 한국이 이곳을 벤치마킹해 백령도 지하요새시설을 건설할 만큼 진먼도는 대표적인 '안보관광지' 명성을 얻었다.
문화에 대한 자부심
대만의 수도 타이베이는 2003년이 되어서야 각종 공식문건에 정식 수도로 기록되기 시작했다. 대만에 잠시 머물고 '언젠가 본토로 돌아갈 수 있다'는 생각을 가졌기 때문이라고.
대만 사람들은 문화의 정통성 고수에 진심이어서 번체한자 사용을 고수하며 중국이 간체를 장려하는 데 반해 모든 공문서와 정부기관 홈페이지에서 간체자를 추방했다.
대만에서 또 중요한 곳은 국립고궁박물원인데 이 박물원은 '중화문화의 보고'로 꼽히고 있다. 베이징 고궁에 보관되어 있던 황실 유물 콜렉션 진수만을 모은 곳으로 유명하다. 중화민국은 대만으로 천도하면서 중화문화의 보물들을 모두 가져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장제스 국민당정부는 1948년부터 유물중 훌륭한 것들만 골라 상하이를 거쳐 대만으로 옮겨왔다. 당시 공산당에서 이를 경계해 공격까지 고려했으나 마오쩌둥은 "대만으로 가져가도 중국 유물은 유물이니 그냥 놔두라." 고 했다고 한다.
저자의 말처럼 역사의 아이러니는 1966년 문화대혁명이 발발한 중국에서는 수많은 문화재들이 홍위병들에 의해 수난을 당한 데 비해 상대적으로 대만에 옮겨진 유물들은 안전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국립고궁박물원 유물은 엄청난데 전시 공간은 좁아서 3개월에 1번씩 소장품을 로테이션 하고 있는데 3개월마다 박물원을 찾는다고 해도 소장된 유물을 모두 관람하는 데는 8년이 걸릴 정도라고 한다.
미국은 장제스 당시 국립고궁원 유물 절반을 내어주면 60년 동안 대만국민들이 일하지 않고도 살 수 있을 만큼 돈을 주겠다고 제안했지만 장제스는 이를 거부했다.
탄탄한 경제력
대만이 국제적, 외교적 고립 속에서도 버틸 수 있는데는 탄타난 경제력의 힘이 컸다. 50년의 일본 통치 기간 동안 공업국가 문턱에 진입한 대만은 1953년부터 2000년까지 연 평균 경제성장률 8.1%를 기록하고 있다.
가장 긴 계엄령이 있었던 나라
대만은 1949년 국공내전에서 패배한 중화민국정부가 대만으로 천도한 후 1987년까지 대만전역에는 계엄령이 선포되어 있었다. 38년의 계엄령은 기네스북에도 오를 정도였다.
국민들의 직접 선거에 의해 여,야간 정권 수평교체가 이루어진 것은 2000년, 선거라는 민주적인 방법으로 정권이 여에서 야로 교체되는 2008년으로 한국이 1997년, 2007년 그랬던 것과 비슷하다.
미국 외교전문지 <포린폴리시>는 입법원을 '의회난동 분야 역대 챔피언'으로 묘사했다. 더하여 한국, 대만, 우크라이나, 영국, 오스트레일리아 국회를 세계 5대 난장판 국회로 선정했다.
더구나 이런 대만의 정치는 한국에 나쁜 영향을 끼치기도 한 셈인데 1972년 '10월유신'을 단행하기 전 각 나라의 헌법을 연구할 것을 지시한 그가 채택한 '모범답안'이 대만식이었던 것이다.
대만의 역사와 인구
대항해시대의 선두주자 스페인과 포르투갈은 로마 교황 알렉산데르 6세의 중재로 1494년 체결한 '토르데시야스조약'을 체결, 필리핀을 제외한 아시아 전체가 포르투갈의 영역으로 간주했다. 포르투갈인들은 동방 항해로상에 위치한 고구마 모양의 섬을 발견하게 되었는데, 초록색 평원이 아름답게 펼쳐진 섬을 보고 "와 아름답다(Ilha Formosa)"고 감탄하며 '아름다운 섬'이란 뜻의 '포모사'라 부른 것이 지명으로 그대로 남았다.
네덜란드는 대만의 일부를 통치하긴 했지만,원주민들에게 세금을 부과하고 본격적인 농사를 위해 중국 본토로부터 한족들을 대량 이주시키기 시작했다. 이주한 한족들은 원래 푸젠성 일대에 거주하였는데, 오늘날 푸젠지방을 고향으로 하는 이 사람들을 민남인(閩南人)이라 하며, 대만 인구 중 73%로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한다.
대만사람 중 나머지 13%를 차지하는 종족은 외성인(外省人)이라 불리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1949년 중화민국 정부가 대만으로 옮겨올 때 같이 건너온 중국 각지의 사람들이다. 종족 문제는 정치, 경제, 사회 문제와 맞물리면서 국민통합을 저해하는 원인 중 하나로 지목받고 있다.
13%의 외성인에게 많은 특권이 집중되어 있기 때문이다.
환잉광린
환잉광린(歡迎光臨)은 '어서 오세요, 찾아주셔서 영광입니다.'라는 뜻으로 대만 사람들이 자주 하는 말이다. 대만 사람들은 전체적으로 친절하고 여유가 있으며 소박하다고 한다. 대부분 사람들의 옷차림이 놀라울 정도로 소박하다고 하는데 어떤 분위기일지 궁금하다.
지파이와 커자젠, 펑리수, 전주나이차(공차)
대만을 대표하는 음식도 소개되어 있다.
MRT젠탄역에서 내려 상설 스린야시장 건물로 가는 광장 앞 하오다다 지파이(대만식 프라이드 치킨),
스린야시장 안 명물 커자젠이 궁금해진다. 커자젠은 일종의 커자(굴)부침개인데, 여기에 간장과 설탕을 넣어 만든 달짝지근한 소스를 뿌려 먹으면 그렇게 맛있다고 한다.
원래 빈민음식이었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재료가 풍부해지고 요리법도 정교해져 별미가 되었다고.
대만식 파인애플 케이크 펑리수는 두꺼운 과자속에 달콤한 파인애플향 육즙이 든 대만 특산품이이라고 한다.
룽붕빙도 있는데 원래 다진 고기를 소로 만든 둥근 떡 룽빙에 다진고기 대신 파인애플로 소를 만들어 넣으면서 겉은 룽빙인데 속은 붕빙(파인애플떡)인 '이율배반적인'퓨전요리가 탄생하게 되고 이런 룽붕빙은 동양에서 길한 동물로 치는 용과 봉황이 이름에 다 들어갔기게 사람들에게 행운을 가져다주는 음식으로 인식되어 약혼식이나 결혼식 필수예물로 자리잡았다고. 재미난 것은 텁텁한 맛을 해결하기 위해 파인애플 대신 박으로 만든 소를 넣기 시작하면서 맛이 더 깔끔해졌다고.
공차의 명칭이 전주나이차인 건 이 책을 통해 처음 알았다.
이 책을 통해 처음 알게 된 게 많은 대만...가까운 나란데 너무했다.
세계를 한데 묶었던 이념이나
세계를 갈라놓고 또 묶는 자본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도 되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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