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르신은 인형작가_ 1
"프로그램 신청할게요.
나이가 좀 많은데..."
"어떻게 되시는데요?"
"78!"
"많으신 것 아니에요. 아흔 되시는 분들도 인형 만드신 걸요~"
"내가 (이런 걸) 좋아해. 동화구연도 하고 있고...ㅎㅎㅎ"
연세가 일흔여덟이라는 수화기 너머 어르신의 목소리는 나보다 젊고 통통 날아오를 듯이 가벼웠다.
"지금 신청해도 돼요?""네, 어르신!"
"내가 꼭 하고 싶어요~."
이번엔 수줍은 소녀 같은 말씀을 해주시는 어르신이다.
올해 세계인형 박물관은 한국문화원연합회에서 진행하는 <어르신문화프로그램 공모사업>에 <어르신은 인형작가>라는 프로그램으로 지원해 선정됐다. 65세 이상 어르신들과 함께 문화예술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사업이다.
짧은 박물관 경험에도 어르신들과의 몇 번 만남이 있었고 그 만남에서 느낀 게 많았던 덕분에 공모 공고를 보고 바로 어르신들과의 프로그램을 떠올렸다. 30여 명의 어르신들이 매주 수요일마다 박물관에 오셔서 다양한 종류의 인형을 만들고 나중에는 작가 수준으로 작품을 만들어 전시도 하고 작품 판매도 하기 위해 마련된 프로그램이다.
박물관의 프로그램 공모라는 게 신청하다고 다 선정되는 것이 아니지만 이 프로그램만큼은 꼭 선정되길 기대했는데 바람대로 됐다.
하지만 파주에서 처음, 문 연 지도 그리 오래되지 않는 박물관이라 이 프로그램을 알리고 여기에 참여할 30여 명의 어르신을 찾기도 쉽지 않았다. 일단 파주문화원을 비롯해 노인복지관, 노인회 등 어르신들이 많이 다니는 곳에 협력을 부탁했고 박물관 근처 두 군데의 아파트 단지에 벽보를 붙이고 탄현면의 몇몇 경로당은 아예 찾아다니며 설명을 드렸다.
처음 신청해 주신 분은 유진경 어르신. 이야기 할머니로 활동하고 계신다.
이건 무슨 운명인가 싶었던 건, 이 프로그램 1호 신청자 어르신의 성함이 우리 박물관을 운영하는 두 사람(유 ** + * 진경)의 이름을 합친 셈이었기 때문이다.
유진경 어르신이 또 다른 어르신에게 알리고 그렇게 우리 프로그램은 알음알음 원래 계획대로 30여 명이 참여하게 되었다.
어르신을 모집하는 과정에서 알게 된 사실 하나.
우리 주변에 멋쟁이 어르신이 참으로 많다는 것이다.
어느 어르신은 동화 구연을 수년 째 하고 계시고 또 어느 어르신은 이야기 할머니 교육을 받아 유치원 등을 다니며 우리나라의 옛이야기를 아이들에게 들려주는 봉사활동을 하고 계셨다. 오카리나를 배우는 분도 있고 생태해설가로 다년간 활동하신 분도 있다.
첫 만남을 갖기 전, 박물관이 궁금해서 찾아오신 열혈 어르신들도 있다.
이제 곧 50대의 문턱을 넘을 나보다 에너지 넘치고 목소리가 좋았다.
사실, 어르신들이 찾아오셨을 때 그 에너지로는 내가 어르신이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하루하루 사느라 바빠 내가 나이가 든다는 것조차 잊고 있다가도
어느 날 문득 흰머리 하나 생기고
또 어느 날 문득 안경을 벗어서야 가까운 사물을 보는 게 편하게 됐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가끔씩 다리가 저려오고 허리도 살그머니 아파온다.
나이의 좌절에 갇히려면 40대에도 얼마든지 그럴 수 있다.
하지만 나이 같은 것, 나이가 주는 좌절 같은 것 알 바 아니라는 듯
소녀처럼 웃고 20대나 30대처럼 활동적이면서도
지혜롭고 고운 어르신들을 만나면 뭐라 딱 집어 말할 수 없는 삶의 경이로움을 느끼게 된다.
프로그램을 시작하기도 전에 나는 어르신들의 매력에 푹 빠질 준비가 되었다.
이 프로그램이 진행될수록 나는 명목만 강사일 뿐, 내용상으로는 열혈 수강생이 되어가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