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물관을 다녀간 적 있는 파주 파평중학교 선생님에게서 전화가 왔다.
중학교 전교생(40명)이 학교에서 손인형 체험을 하고 싶다는 내용이었다.
"그런데 혹시 그림을 그려줄 수 있으세요?"
"네... 필요하시면 그려놓을 수 있습니다."
선생님은 며칠 고민하신 것 같았다. "손인형으로 세계문화 수업을 하고 싶어서 그러는데 혹시 세계의 전통의상 그림도 가능할까요?"
솔직히 잠시 주저했다.
세계의 전통의상을 인형마다 다 그려 넣으려면 시간과 공이 많이 들 것 같았다.
선생님도 그렇게 생각하셨는지 몇 개국의 세계 전통의상을 그리고 다른 인형은 캐릭터로 가자고 하셨다.
그렇게 1차 논의가 됐다.
그런데 내가 막상 그림을 그릴 때가 가까워져 오니 그렇게 그려선 이도 저도 안될 것 같았다.
기왕 세계 여러 나라에 대한 문화교육을 하려면 더 많은 나라의 남녀 의상 정도는 알아야 하지 않을까.
게다가 세계 전통의상 그림과 캐릭터 그림의 조화는 아무래도 부자연스러웠다.
세계 전통의상 손인형을 나라마다 하나씩 만들어 두었으면 하는 생각도 원래 있었던 지라
나는 선생님께 전화를 걸었다.
"세계의 다양한 문화를 주제로 한 수업에 활용하신다면 그냥 20개국 남녀 의상 그림이 좋을 것 같습니다."
선생님은 고맙다고 하셨다.
학교 수업을 앞두고 손인형에 밑그림을 하나씩 그려나갔다.
한국, 일본, 중국은 너무 쉬웠고 독일, 러시아, 몽골.... 등의 나라 옷을 그렸다.
머릿속으로 어느 정도 알고 있다고 생각했으나 그걸 그림으로 옮기려고 하니 더 많은 정보가 필요했다.
나는 박물관의 인형 옷들을 살피고 자료 사진들을 찾아봤다.
손이 많이 가는 작업이었지만 왠지 뿌듯하니 성취감마저 들었다.
그림을 그려나가면서 의문이 들었다.
'나는 이 사진을 보고 그리지만 학생들에겐 이 정보가 없는 상태인데 색칠을 잘할 수 있을까?'
나는 내가 그린 나라의 옷 사진들을 모아 프린트했다. 학생들이 색칠할 때 참고할 수 있게.
일은 많았지만 이 과정들이 그리 힘들지 않았던 것은 전화기 너머로 전해졌던 선생님의 열정 덕분이었다.
학생들과의 수업을 재미있고 알차게 하고 싶은 선생님의 의욕과 열정이, 역시 아이를 키우는 엄마인 내게는 오히려 고맙게 느껴졌다. 나도 단순히 수업을 보조하는 체험 준비자가 아니라 수업 준비자의 자세를 갖게 됐다.
드디어 수업 시간.
아이들은 '이게 어느 나라야?' 맞춰 보면서 호기심을 반짝였다.
꼼꼼히 예쁘게 내가 준비한 그림 위에 색을 칠해 나가는 학생들이 고마웠다. 내가 생각지도 못한 색깔을 쓰는 학생도 있었고 섬세한 장식으로 그림을 더 잘 살려낸 학생도 있었다.
내가 그린 그림 위에 색이 입혀지니 더 멋있었다. 학생들과 나의 콜라보인 셈인가?
이 수업에서 만들어진 인형들로 언젠가 전시회도 개최할 예정이라고 하셨다.
선생님은 수업이 끝난 뒤 학교 소개를 하고 언젠가 하게 될 다음 수업 이야기도 하셨다.
파평중학교는 전교생이 40명이 좀 안된다. 수업시간에 전교 학생회장이 앞장선 인사를 받았다.
선생님은 파주에는 이렇게 규모가 작은 학교가 많다고 하시면서 학교와 학생들에 대한 애정을 숨기지 않으셨다.
선생님의 마음이 고마웠다. 아마 내가 학부모라서 그럴까.
몸이 조금 고생했어도 이날 수업은 최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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