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르신은 인형작가_7
헝겊 인형 수업이 시작됐다.
인형 종류가 다양하지만 그래도 '인형'이라면 헝겊 인형을 우선 떠올리게 된다. 속에 솜이 들어가 있어 그 포근하고 푹신한 촉감이 좋고 천으로 다양한 옷을 만들어 입히는 재미도 있다.
고대 로마 시대의 헝겊 인형 사진을 보고 놀란 적이 있다. 얼굴을 그려 넣진 않았지만 무지의 천으로 만든 머리, 그리고 팔과 다리 모양이 지금의 보편적인 헝겊 인형과 다르지 않았다. 시간이 얼마가 흘러도 인류가 인형에게서 기대하는 가장 기본적인 형태는 그리 달라지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어르신들과의 수업에서는 4번에 걸쳐 헝겊 인형을 만들었다. 처음 두 번은 내가 미리 준비해 둔 옷을 입히고 머리 부분은 펠트천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그다음부터는 천만 준비해 수업에 참가한 어르신들이 옷도 직접 만들고 머리카락도 털실을 이용해 만들어 나갔다.
이미 몇 차례의 수업을 통해 많은 인형을 만들어 온 어르신들은 특히 헝겊인형 만들 때 여보란 듯 숨겨왔던 재능을 선보이며 계속해 수업을 준비한 나를 비롯한 강사진을 놀라게 했다. 어르신에 따라 차이가 있긴 했지만 대부분의 어르신은 헝겊 인형 만들기를 무척 편안하고 즐겁게 여기며 솜씨를 펼치셨다.
별로 가르쳐 드릴 것도 없었다. 다만 인형 본과 인형 옷을 준비하고 펠트로 머리 모양 만드는 법을 알려드렸다. 간단한 몇 가지를 알고 나자 어르신들은 거침없이 바느질을 해나갔다. 커트지 인형을 만들 때도 그랬지만 바느질 속도도 엄청 빨랐다. 인형 본 정도는 순식간에 다 꿰매시고 솜을 넣고 인형 옷을 입혔다.
내가 만들어 둔 인형 옷이 조금 밋밋했는지 첫 시간부터 한 어르신은 인형 원피스 한쪽에 비슷한 계열의 좀 더 진한 색 천으로 주머니를 만들었다. 원피스에 주머니만 하나 만들었을 뿐인데 맵시 나는 포인트가 됐다.
또 한 어르신은 다른 천으로 작은 어깨 가방을 만들었다. 헝겊 인형이 한순간에 귀엽고 청순한 꼬마 아가씨로 변신했다. 어르신들의 열의가 대단했다. 첫 수업이 끝난 뒤 가져온 인형들은 마치 인형 패션쇼를 펼치듯 기발하고 화려하고 멋진 옷차림들을 하고 있었다. 인형 옷본도 필요 없었다. 마치 '인형 옷쯤이야!'싶게 어르신들은 디자이너가 되어 있었다. 다른 어르신이 만든 인형도 유심히 살펴보시곤 때로 응용하고 또 발전시켰다.
원피스에 레이스를 줄줄이 박거나 원피스 자체에 주름을 주어 볼륨 있게 만들었다. 모자며 안경을 쓴 인형도 나왔다. 머리도 잔뜩 멋을 줘서 짧은 커트, 긴 머리, 땋은 느낌이 나는 머리들이 줄줄이 선보였다.
어느 어르신이 어떤 인형을 만들어 오실까, 자못 궁금해졌다.
어르신들은 바느질이라는 손에 익은 기술로 지금껏 봐오고 생각해 왔던 것들을 거침없이 펼쳐내 보이는 듯했다. 이렇게나 다채롭고 창의적일 수 있나, 기대 이상이었다. 인형 속에 언뜻언뜻 어르신들의 삶이 보이는 듯도 했다.
유일한 남자 어르신이셨던 문영규 선생님은 처음에 바느질을 조금 힘들어하셨다. 바느질 방법을 묻고 한 땀 한 땀 천천히 시작하셨다. 인형 옷 만들기도 (당연히) 처음이셔서 만드는 법을 하나하나 물어보셨다. 그런데 어느 순간 인형 옷도 뚝딱뚝딱 만드는 경지에 이르셨다. 낯설고 힘들 텐데 전혀 내색 없이 묵묵히 해내셨다. 바느질을 하며 돌아가신 어머니를 더 생각하게 됐다고도 하셨다. 옛날에는 이불 홑청이며 옷 하나하나 모두 손으로 바느질을 했는데 당신이 지금 바느질을 해보니 작은 인형 옷 하나도 쉽지 않은데 그 많고 엄청난 바느질을 어떻게 다 하셨을까 싶어 진다고도 하셨다.
인형 머리카락을 펠트 천으로 표현하다가 수업이 진행되면서 털실로 바꾸어 표현했다. 털실로 표현하는 인형 머리카락은 실제 사람의 머리카락과 더 비슷한 데다 털실 자체의 포근함이 있어서 어르신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털실을 길게 늘어뜨려 곱게 표현하기도 하고 단아한 올림머리를 만드신 분도 있었고 집시를 닮은 자유로운 느낌을 살리신 분도 있었다. 두 개의 다른 색깔로 독특한 느낌을 내기도 했다.
헝겊 인형은 거의 모든 어르신들이 즐기며 진행되는 작업이었지만 안타까운 일들도 있었다. 60대, 70대, 80대 어르신들이 계신 수업이다 보니 아무래도 눈이 침침하신 분들이 많았는데 결국 눈에 큰 부담이 왔던 어르신 두 분은 수업을 그만두셔야 했다. 누구보다 헝겊 인형 만들기를 좋아하셨던 두 분이어서 안타까움이 더 컸다.
어르신들이 만든 헝겊 인형은 놀랍게도 만든 어르신을 그대로 닮아 있었다.
활짝 웃는 어르신 옆에서 함께 활짝 웃는 어르신을 닮은 인형은 보기에도 그렇게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