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문화도 모여서 힘이 된다

by Jino

지난 4월부터 다섯 달간 박물관은 매주 한 번씩 어르신들이 오셔서 참여하는 <어르신은 인형작가>란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처음 아무것도 그려져 있지 않던 인형 모양의 빈 천을 마주하며 난감해하시던 어르신들은 어느새 꽤 복잡하고 정교하면서도 새롭고 멋진 인형들을 척척 만들어 내는 단계에 이르렀다. 그렇게 처음엔 우려했던 <어르신은 인형작가> 프로그램은 꽤 큰 성과와 보람을 안기며 종강할 수 있었다.


우리 박물관에선 어르신들이 인형을 만들었지만 또 다른 지역의 문화원들에서는 어르신들이 공예나 그림, 공연 등 다양한 활동을 했다. 수업 중간중간 우리 박물관 소식을 올리느라 어르신들의 문화예술프로그램 활동을 알리던 어르신 사이트( www.seniorculture.or.kr)에 들어갈 때마다 다른 지역에서 화려한 옷을 입고 춤을 추거나 멋들어지게 악기를 연주하는 많은 어르신들의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막연히 멀리서 어르신들의 문화예술활동에 대한 소식을 접할 때면 쉽게 생각할 수 있다. 외람되지만 그게 춤이 됐든 노래가 됐든 그 실력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 보지 않았다. 취미로 편하게 하시는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나 자신 어르신들과 수업을 하면서 놀랐던 건 오히려 넘치는 열정과 창의력, 응용력이었다. 어르신들은 뜨거웠다. 함께 수업을 도와주시던 두 선생님도 나도 그 뜨거움에 놀랐으니까.


이렇게 뜨거운 어르신들 활동의 성과와 결실을 함께 나눌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됐다. 경기도문화원연합회에서 주최한 <2017 페스티벌 31>. 11월 28일과 29일 안성 안성맞춤 아트홀에서 경기도 31개 권역의 문화원 연합회 어르신들이 올 한 해 해오신 문화예술활동을 한눈에 볼 수 있도록 마련된 자리였다. <어르신은 인형작가> 활동을 하신 우리 어르신들과 함께 참여했다.


어르신들은 당신들의 작품이 박물관에 전시될 때도 그 전시회를 소중하게 생각하셨다. 그런데 더 큰 무대에서 전시회가 열린다고 하니 진심으로 기뻐하고 뿌듯해하셨다. <2017 페스티벌 31>은 크게 전시와 공연이라는 두 개의 부문으로 나눠 진행됐다. 전시 부문과 공연 부문. 오전에 수업이 있어 정오가 되어서야 파주를 떠날 수 있었던 우리들은 본 공연이 시작되는 29일 오후 4시 전에 전시회를 둘러보았다.


안성에 도착하자마자 어르신들의 인형이 전시된 곳을 찾았다. 꽤 너르고 눈에 잘 띄는 곳에 어르신들의 작품이 놓여 있었다. 출품 작품 수 제한으로 어르신들의 모든 인형을 전시할 수 없어 아쉬웠지만 박물관 전시에 비해 여유 있는 공간에 작품명까지 달린 어르신들의 작품은 보기가 좋았다.


우리 작품을 보고 나니 다른 어르신들의 작품이 궁금해졌다. 우리 작품은 과천문화원의 매듭 작품과 나란히 전시됐는데 촘촘하게 꼰 매듭 작품들은 그 색이며 모양이 고왔다. 매듭으로 만든 옥수수는 옥수수를 귀하고 예쁜 모양으로 승화시켰다. 한 동양화가의 작품 위에 매듭으로 고추잠자리를 만든 작품은 그 아이디어도 좋을 뿐 아니라 그림과 어우러져 아련한 향수와 애틋함, 어떤 푸근함을 불러일으켰다. 한 어르신은 "다음에 과천 문화원과 컬래버레이션 한 번 해보자"는 제안도 하셨다. 풀짚으로 개구리를 만든 풀짚공예박물관 작품도 인상적이었고 광주문화원 어르신들의 서양화 그림은 왠지 자꾸 눈길이 가는 강렬함이 있었다. 의정부문화원의 규방공예는 멋스러우면서도 깜찍했다.


전시실 사이의 복도에서는 안성문화원에서 안성의 유적과 자료를 전시하며 지역 역사를 설명했다. 내가 갔을 때는 안성의 옛 여자 소리꾼 바우덕이에 대해 알려주셨는데 옛날에도 그렇게 멋진 여성이 있었다니 다음에 기회가 되면 천천히 알아봐야지 싶었다.


네 시의 본 공연까지 모자랄 것 같은 시간은 조금 남았다. 열정적인 우리 어르신들은 시간 여유가 조금 더 있으면 안성 박물관에도 가려고 했으나 그러기에는 시간이 조금 부족했다. 안성맞춤 아트홀을 여유 있게 서성거리면서 기다렸다. 안성맞춤 아트홀은 생긴 지가 얼마 안 된 듯했다. 건물에서 피아노 느낌이 나도록 신경 써서 설계된 듯했다. 녹지며 벤치가 없는 것이 아쉬웠지만 아마 만들어진 지 얼마 안 되어서일 것이려니 싶었다.


드디어 네 시의 공연. '내가 있는 날 31'이라는 부제를 띤 이 공연은 지방문화원 동아리들이 주축이 돼 장르 컬래버레이션 기획콘서트란 이름이 붙었다. 시작이 조금 늦어지는가 싶었더니 첫 공연은 수원문화원의 이름도 재미있는 <검정고무신> 동아리가 펼친 각설이 타령이었다. 개인적으로 각설이 타령을 좋아하지 않는데 여자 어르신들 주축으로 알록달록 고운 색의 각설이 옷을 입고 펼치는 각설이 떼 타령이 무척이나 경쾌했다.


그다음으로는 안성문화원의 민요 코너가 있었다. 바우덕이의 후예답게 고운 한복을 입고 쨍하니 펼쳐내는 장대장타령이 인상적이었다. 의정부문화원의 <하늘소리 오카리나 앙상블> 공연도 좋았다. 곱고도 젊게 차려입으신 어르신들이 내는 오카리나 소리는 더 부드럽고 경쾌하게 느껴졌다.


어르신들의 잔치였지만 젊은 층이 주축이 된 성북문화원의 <빈티지 프랭키> 밴드 공연은 강렬했다.

이 밴드는 특이하게도 시인들의 시를 록 음악으로 표현했는데 이육사 시인의 <절정>은 이름 그대로 공연을 절정으로 이끌었다. 에너지 넘치면서도 강한 비트의 음악이 글자로만 대하던 시를 전혀 다르게 느끼게 만들었다.

문화란 어쩌면 이게 본질이 아닐까. 익숙했던 그 무엇을 이렇게 바꾸어도 보고 저렇게 바꾸어도 보면서 전혀 새로운 다른 것으로 멋지게 만들어 버리는 속성.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빈티지 프랭키> 공연은 따로 챙겨보고 싶었다.


어르신들이 하얀 옷을 곱게 차려입은 오산문화원 <오산 물향기 시니어합창단>의 공연은 의상은 의상대로 합창은 합창대로 감명 깊었다. 여자 어르신들은 순백의 드레스를, 남자 어르신들은 멋진 하얀 슈트를 입고 나왔다.

흰 드레스가 어르신들에게 저렇게 곱구나, 싶었는데 다음 순간 어르신들이 내는 목소리는 더 아름다웠다. 그리고 한 분이 합창 공연이 펼쳐지는 동안 마임 비슷하게 손을 중심으로 표현을 하셨는데 몽환적이었다.


공연의 마지막은 강원도 철원문화원 <대봉의 울림> 팀의 난타와 태권도 공연단 순서였다. 수십 명의 어르신들이 지치지도 않고 북을 두드리셨다. 역동적인 마무리였다.


공연 관람은 꽤 오랜만이었는데 지루할 틈 없이 두 시간이 지나갔다. 색깔 다른 여러 개의 공연이 잘 소화됐다. 다양한 전시와 공연을 보고 나오니 앞으로 내가 만들어야 할 많은 기획이 조금은 참신해지지 않을까 싶었다.


여기서 저기서 살아서 꿈틀거리고 그 꿈틀거림들이 만나서 시너지를 내는 것,

문화도 서로 맞대어야 힘이 된다.


KakaoTalk_20171129_213040196.jpg 작가 어르신들과~^^
KakaoTalk_20171129_161217199.jpg 어르신들이 만든 호두까기 인형 전시
KakaoTalk_20171129_161225582.jpg 반가운 어르신들의 작품
KakaoTalk_20171129_161204887.jpg 풍악을 울리는 어르신들
KakaoTalk_20171129_161201324.jpg 신명나게 즐기는 축제
KakaoTalk_20171203_132555022.jpg 짚풀공예박물관의 전시물. 개구리가 인상적이다.
KakaoTalk_20171203_132604375.jpg 광주 문화원 어르신의 작품.


KakaoTalk_20171203_132607244.jpg 젊은 느낌의 어르신 작품.
KakaoTalk_20171203_132617618.jpg 꽃의 느낌이 좋았던 작품.
KakaoTalk_20171203_132640667.jpg 매듭으로 만든 거북이.
KakaoTalk_20171203_132610107.jpg 의정부 문화원 어르신들이 만든 버선 열쇠고리.


KakaoTalk_20171203_132638172.jpg 매듭으로 만든 옥수수
KakaoTalk_20171203_132648411.jpg 꽃다발 매듭 브로치
KakaoTalk_20171203_132644527.jpg 고추 잠자리 매듭과 그림이 잘 어울린다.
KakaoTalk_20171129_161159005.jpg 어르신들의 공연 무대. 공연은 아쉽게도 사진을 찍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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