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르신은 인형작가> 프로그램이 끝나고 어르신들과 안성까지 다녀오고 보니 어르신들과 언제 또 만나서 수업 진행할 때처럼 함께 인형을 만들면 좋겠다는 생각은 하고 있었다. 프로그램 계획을 세울 때부터 인형만 만들고 끝내는 일회성 행사에 그치지 않고 이 지역의 어르신들이 천천히라도 인형작가가 되어가는 꿈을 꾸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계획이 머릿속에 맴돌 뿐 실제로는 닥친 일에 치여 조금씩 그런 계획을 미루고 있던 때에 어르신들과의 카톡창이 오랜만에 울렸다.
"인형을 많이 만들어서 성당에서 판매하려고 하는데 시간 되는 분 도와줘요!"
인형 수업 중도에 참석했지만 참석하자마자 열정적으로 인형을 만드시던 보물섬 이명희 선생님이었다.
인형 스무 개와 털실을 박물관에 가져올 테니 머리카락을 좀 붙여달라는 것이었다.
바로 네 분의 다른 선생님이 함께 하겠다는 답장을 했다. 오랜만에 점심도 같이 먹기로 의기투합했다.
다음날, 우리는 모여서 점심을 함께 했다. 원래 네 분이 더 오셔서 도울 예정이었지만 두 분은 사정이 생겨 못 오시고 두 분이 오셨다. 원래 선생님들은 나와 박물관 밖에 나가 맛있는 걸 드시고 싶었던 모양이지만 내가 박물관을 나가 밥을 먹긴 힘든 사정을 말씀드렸더니 그냥 시켜먹자고 하셨다. 우리의 메뉴는 짬뽕. 원래 내가 잘 시켜먹는 메뉴는 아니었는데 어르신들과 같이 먹는 짬뽕은 맛있었다. 원래 그 식당의 짬뽕이 맛있었던 건지 아니면 어르신들과의 식사가 즐거웠기 때문이었던 건지는 정확히 모르겠다.
식사 도중 한 선생님이 말씀하신다. "아니, 일이 있어서 한 번씩 가는 곳에서 나보고 '할머니, 할머니' 하는 거야. 근데 그 사람들이 나보고 할머니라고 하는 건 좀 그렇지 않아? "
"그래 그 사람들의 할머니뻘도 아닌데." "어린이집에서 애들이 그러는 거랑은 다르지."
공교롭게도 그 전날, 우리 집에 동네 어르신이 한 분 찾아오셨다. 그 어르신은 어머니와 비슷한 연배의 남자분이었는데 자신을 가리켜서는 '아저씨'라면서도 우리 어머니에게는 '할머니'라고 쓰는 게 좀 신기하다 싶었다. 아니나 다를까, 그분이 가고 나자 어머니는 "아이, 왜 자꾸 할머니래."라고 하셨다.
상대방이 원하지 않는 호칭으로서의 '할머니'는 왜 이렇게 소비되는 걸까?
우리는 또 한 선생님이 곧 부부 동반으로 중국 여행 간다는 이야기를 듣고 부부 동반 여행이 좋다느니 혼자 가는 여행이 좋다느니 이야기를 나눴다. 예전부터 느껴왔지만 어르신들과의 대화는 전혀 불편하지 않다. 어르신들은 나이에 따라 다른 사람의 말을 낮춰 듣거나 하지 않으신다.
그렇게 이야기 나누면서 식사를 하고 보니 또 시간이 그리 넉넉지 않았다. 보물섬 선생님과 함께 온 선생님은 곧 가셔야 했고 다른 한 선생님도 한 시간여의 여유가 있을 뿐이었다. 더구나 보물섬 선생님과 함께 온 선생님이 차를 운전해 오셨던 것이라 보물섬 선생님이 따라나서지 않으면 나중에 이동하기가 여의치 않은 상황이었다.
그러기에는 이렇게 모인 시간이 아깝단 생각이 들어 내가 보물섬 선생님께 집 방향이 비슷하니 퇴근하는 시간까지 인형을 만들다 가시는 게 어떠냐고 말씀드렸다. 그렇게 시간이 넉넉해진 보물섬 선생님은 박물관 근처에 사시는 한경자 선생님과 이런 이야기 저런 이야기 나누며 인형을 만들었다.
"이 인형에는 이 색깔 실이 어울리겠죠?""예, 이게 어울려요. 가만, 이것도 괜찮네요?"
"나는 머리를 이렇게 했어요. 끝부분을 잘라내지 않고 자연스럽게 웨이브 지도록." "어머, 멋져요, 선생님!"
저렇게 인형 만들며 행복해하시는 두 분. 인형도 안 만들고 갔었다면 얼마나 섭섭했을까.
인형을 만드는 데는 답이 없다. 하지만 인형에 옷을, 혹은 머리가 될 실을 갖다 대어 보면 좀 더 어울리는 색을 알 수 있다. 선생님 두 분은 그렇게 인형이 더 예쁜 머리카락을 가질 수 있도록 이 실도 갖다 대고 저 실도 갖다 대며 궁리하신다.
스무여 개의 인형들은 어느새 자신들에게 어울리는 머리카락을 가지게 되었다. 한경자 선생님의 한 시간은 예상보다 긴 시간이었다. 이제 숙제를 끝낸 보물섬 선생님은 박물관 바깥 풍경을 폰에 담았다. 나는 여러 가지 인형 만드는 법이 담긴 외국 책을 보여드렸다. 선생님은 많은 관심을 기울이셨고 우리는 자연스럽게 다음에 함께 만들 인형에 대해 이야기했다. "마침 그날은 오후부터 눈이 내렸다. 눈은 금세 쌓여서는 퇴근길을 걱정하게 만들 정도였다.
퇴근 시간까지 기다렸다가는 꼼짝없이 갇힐 것 같아 보물섬 선생님과 서둘러 박물관을 나섰다.
눈길 운전은 아찔했지만 보물섬 선생님 앞에서 내색할 수 없어 최대한 천천히 조심스럽게 운전했다.
평소 같았으면 15분이면 갔을 길이 1시간이 더 걸렸다.
하지만 선생님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가다 보니 그리 힘들지도 지루하지도 않았다.
"오랜만에 인형 만드니까 좋네요. 우리 시간 되는 사람들 한 번씩 모여 인형 만드는 것 어때요? 각자 재료비 내고 부담 없이 한 달에 두 번도 좋고 매주도 좋고..."
사실 나도 그런 시간을 갖고 싶었다. 조만간 계획을 세워 말씀드려야지 싶었는데 이심전심이었던 걸까?
"좋아요, 선생님. 저도 그렇게 하면 좋겠단 생각 했는데..."
그다음 날이었다. 다른 선생님에게서도 카톡이 왔다.
"샘 어제 가보고는 매주 수요일 오후에 인형 만들러 가면 좋겠다 싶네요. 재료는 사고 수요일 오후에 박물관에 가도 될까요?"
우리는 그렇게 12월 20일 수요일부터 인형을 다시 만들기로 했다. 많은 인형을 함께 만들었지만 이제 조금 더 새롭고도 진화된 방법으로 인형을 만들고 싶다. 어르신들 커뮤니티를 어떻게 만들까 고민만 하고 엄두가 안 났는데 어르신들이 이렇게 먼저 말씀해 주시니 얼마나 반가운지 모르겠다.
보물섬 선생님은 원래 성당에서 인형들을 판매해서 재료비만 받고 수익금을 기부할 계획이었는데 재료비도 안 받고 모두 기부하기로 맘을 바꾸셨다고 한다. '그래야 제대로 기부하는 것 같아서...'라면서.
인형 하나 만드는 데 들어가는 재료와 마음과 정성과 노력을 알기에 나는 선생님의 결정에 조금 놀랐다. 선생님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인형 하나하나 박스로 예쁘게 포장까지 하셨다.
정성껏 포장된 선생님의 인형 사진을 보는 순간, 나는 그 인형들에 들어간 애정과 정성과 시간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다. 우리는 인형을 만들기 시작했는데 그 인형들은 또 인형을 낳고 사랑을 낳으며 퍼져 나간다. 우리 어르신 작가들의 뜨거운 사랑을 먹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