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레이 Apr 06. 2023

외롭고 상냥한 사람들에게 보내는 스팸 문자

Pig butchering scam

낯선 사람들이 문자를 보낸다. 번호는 다르지만 내용은 비슷하다. 오랫동안 연락이 끊겼던 사람이 안부를 묻는 것처럼, 무언가 부탁할 일이 있는 것처럼 문자를 보낸다. 모르는 이름을 대며 말을 걸고, 답을 하지 않을 경우에는 그 뒤에 짜증 섞인 말을 몇 마디 덧붙이기도 한다.



“바쁘세요? 문자 확인 후 답장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어떻게 지내세요?”


“안녕하세요, 저희 이모한테 연락받았나요? 우리 먼저 서로 사진을 교환하여 서로에 대해 알아가도 될까요? 이런 방식의 소개팅은 민망하네요.”


“Annie 선생님 안녕하세요, Chris에게 소개받았습니다. 그가 당신이 매우 훌륭한 영어 선생님이라고 얘기해 주었습니다. 저는 제 딸의 영어 선생님을 구하고 있습니다. 시간 있으신가요?”

“죄송한데 지금 답변하기 어려우신가요, 아니면 메시지를 못 보셨나요?”


“아직 바빠요? 답장 부탁드려요”

“그렇게 바쁜가요? 메시지를 보시면 바로 답장해 주세요. 답장 기다리겠습니다.”


“오랜만에 연락했어요. 오늘 안 바쁘면 같이 커피 마셔요”

“왜 답장 안 해요? 설마 절 잊은 거예요?”

“문자 봤어요? 왜 답장 안 해요?”



그들은 이런 문자에 답을 해줄 만큼 외롭고 상냥한 사람을 찾는다. 바다 건너편에 두고 왔던 말로 말을 건 것이 너무나도 기뻐서, 그 말로 대화하는 것이 몹시 행복해서, 평소라면 무시했을 말에 “죄송합니다. 누구신가요?”라는 말이라도 얹어서 돌려보낼 사람들을 찾는다. 답장을 한 사람들은 모르던 사람과 친구가 되고, 가상 화폐에 투자할 수 있는 비밀스러운 기회를 얻고, 돈을 빼앗긴 다음 그 친구를 잃어버린다. 사람을 사람으로 보지 않고, 돼지를 살찌우듯 호의와 관심을 몸 안에 가득 채워 넣은 뒤, 배를 갈라 돈과 세상에 대한 신뢰를 모두 끄집어내 가는 pig butchering scam이다.


당하고 나면 스스로가 부끄러워 견딜 수 없을 것이다. 나는 그렇게 속아버린 사람들을 비웃을 수 없다. 그 사람들이 느끼고 있었을 외로움, 그리고 어느 날 뜬금없이 누군가가 문자를 보내왔을 때 얻었을 기쁨을 알기에 그들을 탓할 수 없다. 왜 굳이 모르는 사람들에게 마음 한편을 내어주고 거기서 머물게 하였느냐고 다그칠 수 없다. 사람을 믿었다 마음을 다친 순진한 사람들의 상처를 굳이 비집고 들어가 헤집어 놓고 싶지 않다. 그러지 않을 것이다.


이 글은 세상을 명백히 더 삭막한 곳으로 만들어가고 있는 사기꾼들에 대한 반항이자 작은 복수다. 이글이 누군가에게는 정보로 읽히길, 또 다른 몇몇에게는 위로로 읽히기를 바란다.

매거진의 이전글 때리고 부수고 깎아내어 경계를 드러내는 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