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레이 Apr 21. 2020

낯선 사람에게 니하오라고 말하는 이들

대화에 한없이 가까운

이곳에 살면서 “니하오”란 말을 두 번 들어보았다. 예고 없이 나의 시야에 들어온 그 사람들은 그 짧은 말만을 남기고 걸어온 속도만큼 빨리 내 뒤로 사라졌다. 처음부터 어떠한 대답도 기대하지 않은 것 같았다. 그 말에는 호의도 악의도 없었다. 말을 건넨 사람이 어떤 얼굴이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때 내가 무슨 표정을 짓고 있었는지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 후 나는 그때를 간간히 돌이켜보았고, 흐릿한 그 모습을 머릿속에서 이리저리 굴릴 때마다 중학생 시절의 옛 기억이 그 위에 엉겨 붙었다.


나는 통학 버스를 타고 중학교에 다녔다. 같은 버스를 타고 다니던 아이들 중 몇몇은 꽤나 특이한 취미를 가지고 있었다. 길을 지나는 이들이 있으면 창문을 열고는 소리를 지르는 것이었다. 그들은 의미 없는 말을 내뱉고는 창문을 닫고 그 아래에 숨어 영문 모른 표정으로 주위를 두리번거리는 사람들을 킥킥거리며 올려다보았다. 그리고 조금 뒤 버스가 다른 곳으로 이동하면 다시 창문을 열고는 움직이는 인형을 본 개가 짖는 것처럼 소리를 질렀다. 그 일을 통학로를 지나는 내내 되풀이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들이 평소처럼 소리를 질렀을 때, 누군가가 빨간 불에 멈춰 선 버스를 향해 달려와 문을 발로 걷어찼다. 그때 뒷좌석에 몸을 파묻고 숨어 있던 그들의 당황한 모습이 기억 속에 선명하다. 고등학교 교복 다리가 발길질의 무게와 함께 그들의 삶 속으로 비집고 들어왔고, 그들은 어찌할 바를 모른 채 서로를 어벙하게 바라보기만 했다. 그러한 일은 절대로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던 것 같았다.


몇몇 말들은 대화에 한없이 가깝지만 전혀 다르다. 그러한 말들은 한쪽 방향으로만 흐른다. 말을 듣는 이가 꼭 어떤 특별한 사람일 필요는 없다. 오히려 인간이 아닌 것이 더 좋다. 감정을 거울처럼 그대로 비춰주면서 “그렇군요.”라고 말하며 고개를 끄덕이기만 하면 된다. 말소리에 맞춰 이리저리 떠다니다 말이 끝나면 사라져야 할 이들이 갑자기 땅에 발을 딛고 자신의 삶의 무게를 이야기하기를 그들은 바라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오히려 당황스러운 일일 것이다.


그러기에 낯선 사람에게 “니하오”라고 말하는 이들은 애초에 대답을 바라지 않았을 것이다. “니하오”는 서로 구분되지 않는 이방인들을 향한 말이다. 뇌는 자신이 속한 인종 바깥에 있는 얼굴들을 쉽게 구분해 내지 못한다.(Phelps, 2001) 그러기에 구별되지 않는 이들이 각자의 특별한 삶을 살며 자신만의 의견을 가지고 감정을 느낄 것이라고 생각하기는 어렵다. 그러니 무언가 대답을 받을 것이라는 생각 없이 “안녕”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얼굴이 있을 자리에 대신 달려 있는 터무니없이 큰 ‘아시안’이라는 명찰 너머에 인간이 있을 것이라고 굳이 상상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멈춰 서서 명찰을 들춰볼 이유 또한 없을 것이다.


나는 가끔 그때 “니하오”라 말한 이를 붙잡아 세워 무엇이든 말을 했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났을지 상상해본다. 갑자기 눈앞에 인간이 나타난 것에 두려워했을까. 혹은 인간이 아닌 것이 인간인 척을 한다고 생각하며 낄낄거렸을까. 아니면 그러한 사건 그 자체가 이후 어딘가에서 흘러지나가는 가십거리가 되어 소비되었을까. 모르겠다. 그리고 그다지 알고 싶지도 않다.


1. Phelps, E. Faces and races in the brain. Nat Neurosci 4, 775–776 (2001). https://doi.org/10.1038/90467


매거진의 이전글 이 복잡한 세상에서 남의 차를 타고 돌아다니는 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