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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현 Feb 03. 2020

'답'

아무것도 아닌 단어 하나

"그래서 결론이 뭐야!"


회의가 시작되자마자 상사는 대뜸 그렇게 말했다. 모두가 이제 막 보고서를 펼쳤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비단 직장 생활에서만 그런 것은 아니었다. 과거 내 행동이 불러온 오해로 연인을 서운하게 만들었던 적이 있었다. 내 잘못이 있었기에 나는 진심을 담아 말을 꺼냈지만, 곧 상대방의 말에 내 사과 끊어졌다.


"그래서 이제 뭘 어쩌겠다는 건데?"


정답, 결론, 대안... 모두가 답을 원했다. 거기에는 나조차 예외가 아니었다. 사실 나는 내가 답만을 원하고 있다는 것을 자각조차 하지 못했었다.


"문제 다 푼 사람 손 들어"

"최대한 빨리 답을 찾아야 점수를 높게 받을 수 있다"


어린 시절부터 누군가 말했다. 답, 정답을 찾아야 한다고. 그것도 최대한 빨리 찾아야 한다고 했다. 내용을 보지도 않고 문제부터 보는 것이 노하우라는 이름으로 귀에 들어다. 그런 교육을 받았다. 그렇게 답을 찾는 삶 30년 넘게 지속되다 보니 나도 그게 자연스러워졌다. 그래서 그게 맞는 줄만 알았다.


모두가 답을 원했다. 서론과 과정을 원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그저 답만을 원했다. 돈이 얼마나 드는지, 수익이 얼마나 나는지, 나에게 어떤 이득을 주는지... 명쾌하지 않은 답은 무능력을 보여주는 잣대가 되었고, 결론을 적지 않은 보고서는 제출하지 않느니만 못한 반응을 초래했다.


빠르고 명확한 답을 찾는 것. 그게 중요했다. 여러 가지 사안이 얽혀 결론을 내기 애매한 문제조차 명확한 결론을 내야 했다. 그래서 답을 찍었다. 운이 좋아 그렇게 적은 답이 맞는 경우는 아무 일도 없었고, 그런 경우에는 일을 잘하네라는 말 뒤따라왔다. 반대로 내가 찍은 답이 빗나간 경우에는 핀잔을 들었지만 나는 고개를 숙여 상황을 모면할 수 있었다. 역시 가장 최악의 상황은 결론을 명확히 내지 못한 경우였다. 무능하고, 우유부단하며, 자기 주관이 없는 사람. 명확한 결론을 내지 못한 나에게 쏟아진 시선이었다. 그 이후로 나는 무조건 결론을 써서 냈다. 그게 내가 찾은 답이었다.


비단 나만 겪는 상황이 아닌 것 같다. 이 사회 전체가 비슷해 보인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문제가 생기면 답만 찾는다.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문제가 생기면 빨리 답을 내놓으라고 한다. 무슨 문제인지 정확히 알기도 전에 답이 무엇인지부터 찾고 본다. 허겁지겁 내놓는 답이 맞을 거라고 믿으며...


빠르고 명확한 답은 분명 불확실성이 높다. 그리고 얇다. 그럼에도 이 사회는 오직 답을 찾는다. 서양 고전을 읽다 보면 질문자 답을 이야기해주지 않는다. 계속해서 상대방에게 질문을 던진다. 그 사람이 생각하도록, 계속 생각해서 본인의 답을 찾을 때까지. 그럼에도 끝내 답을 찾지 못하는 이야기도 있었다. 그러나 그것도 괜찮다고 책에서는 말하고 있었다. 어쩌면, 어쩌면 내가 그런 교육을 받았더라면, 이 사회가 그런 분위기라면 그때도 그럴까라는  아쉬움도 들었다.


지금도 나는 답을 쓰고 있다. 그러나 답보다 문제 제기 자체에 의미를 부여하고, 노하우라는 이름의 요행을 쓰지 않는 그런 사회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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