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 감독이 촬영 가면, 믿고 보낼 수 있어요.
현장감이 좋아서 알아서 잘해오니까
같이 일하는 작가들은 편하지."
코너를 함께하게 될 촬영감독은
내부에서 평판이 좋은 베테랑이었다.
당시 나는 일에 지쳐있는 상태라서
'그래. 덕분에 나도 편하게 일해보자'는
생각에 의지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
그렇게 바닷가 마을 이야기를 담는 코너의
스텝으로 만나 일을 시작했다.
생계에 바쁜 바닷가 사람들을 전화로 붙잡고 섭외하는데
한계가 있다 보니 나는 최소한의 상황만 체크하고
나머지는 감독의 노련함이 요구되는 상황이었다.
초창기 코너가 자리를 잡기까지 감독은
무뚝뚝한 건지, 낯을 많이 가리는 것인지
현장을 다녀오기 전이나 후에 별 말이 없었다.
특별히 요구하는 내용도 없고
현장 상황이 궁금해서 전화를 걸면
"섬 날씨가 좋지 않다. 볼거리가 별로 없다.
이장님이 출타 중이라 도와줄 사람이 없다” 등
전화기 너머 현장은
예상 밖 난관들이 펼쳐지기 일쑤였다.
‘어쩌지! 당장 누구한테 도와달라고 해야 할까’
고만하는 사이 감독은 나를 안심시켰다.
“알아서 해볼게요. 나중에 영상으로 확인하세요.”
큰일 날 것처럼 다급했던 목소리는 엄살이었나?
실제 편집 영상을 받아보면
부두의 할머니와 소박한 대화를 살리거나
리포터의 흥얼거리는 노래와 풍경이
한적한 마을 분위기를 대변하기도 하는 등
내가 생각하지 못한 전개가 펼쳐졌다.
그 사이 감독은 경계를 풀었는지
촬영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전화해서는
피곤해서 졸음운전(?)이 걱정된다며
운전기사가 있어야 한다고 하소연을 하기도 하고
편집 영상을 본 소감을 묻기도 했다.
그렇게 우리는 우여곡절 끝에 불가능하게 보였던
50회 시리즈의 종지부를 찍었다.
그 후 내가 방송사를 잠시 떠나겠다고 나서던 날.
그가 뒤풀이에서 커피카드 선물을 내밀며
마음속의 이야기를 털어주었다.
“그동안 정말 고맙고 감사했습니다.
사실 작가님 구성안 보고 처음에 깜짝 놀랐어요.
제가 더 잘해야겠다고 생각했고
그래도 부족했던 것 같아서 미안하고…”
그런 거였다고? (흐뭇한 미소가 지어졌다)
내가 부족하고 신경을 더 못써서
현장에서 고생만 시키는 것 같아 미안했는데
그는 팀원이 수고하고 애쓴 것을 크게 평가해줬다.
이후 다시 원팀이 되지는 못했지만
두고두고 그 시절 감독의 배려가 잊히지 않는다.
잘하면 내 탓, 안 되면 남의 탓하는 일터에서
찐 베테랑이 그리운 법이니까 말이다.
헤어지고 알게 된 진심,
저도 덕분에 성장한 것 같아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