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보는 거지 뭐" 일을 사랑할 수 있다면

by 뚜벅뚜벅

후배와 밥을 먹다가 최근 일을 그만두고

새로운 길을 찾아 떠난 다른 팀 작가 얘기를 들었다.

이런 소식을 들을 때면

"그래. 잘했어! 한 살이라도 어릴 때 다른 길 찾아야지."

라며 응원을 보내지만, 어쩐지 마음 한 구석이

불편한 것도 사실이다.

맞은편 후배는 "나도 그만둘까?"라며

진담 같은 농담을 하더니

사실 선배들 보면 희망이 없다고 뼈 있는 말을 던졌다.

"미안하다. 그런 길을 못 만들었네.

나도 선배들 보면서 그런 생각했는데 이제 내 차례인가?"

쓴웃음을 지으며 서로의 상황을 다독였다.


후배한테 받은 송곳 질문이 아니더라도

한 번씩 '나는 어떤 선배인가'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일을 시작하고 5-6년 차쯤 됐을까...

당시 지역에서 일하고 있던 나는 소위 말하는

메이저리그(전국방송)에 대한 열망으로 가득했다.

부모님의 반대를 무릅쓰고 서울 가서

윌세살이를 하겠다며 독립을 외쳤다.


현실적으로 아는 사람 하나 없고

누가 오라고 추천한 것도 아닌데

서울에만 가면 뭔가 될 거라는 확신에 차 있었던 것 같다.

그 후 나는 조언을 얻을 만한 선배 찾기에 나섰다.

마침 내가 담당하던 라디오 방송에서

책을 소개하는 코너가 있었는데

사심을 담아 방송작가의 책을 선택했고,

그 인연으로 큰 기대는 없었지만

작가분에게 내 사정을 설명하고 도움을 요청했다.


기회는 구하는 자에게 오는 법이라고 했던가?

작가님은 얼굴도 모르는 나에게 미팅을 제안해주셨고,

그 일을 계기로 작가님을 만나

서울 상황을 대략적으로 파악할 수 있게 됐다.

교양 프로그램을 오래 했던 작가님은

한 제작사에서 작가 팀장으로

작가진 전체를 이끌고 있었고,

자신이 직접 프로그램을 기획하며

예능으로 영역을 확장했고

대학원에서 관련 강의를 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었다.

마치 내가 만나고 싶었던 롤모델을 만난 기분이었다.

"어떻게 그 많은 일을 소화하세요?"라고 묻자

작가님은 "해보는 거지 뭐. 다 할 수 있어요."라며

겸손하게 답했다.

그 대화를 마치고 마음이 참 많이 부풀었던 것 같다.

'나도 누군가에게 저런 선배가 되고 싶다'라는

생각 때문에...


15년도 더 지난 지금.

현실의 나는 그 시절 목표한 만큼 올라서지 못했다.

여전히 일을 계속할 수 있을지 불안하고

그래서 늘 다른 자리를 기웃하고 있는 채로 말이다.

하지만 얻은 것도 있다.

그 시절 선배 작가님이 그랬던 것처럼

나 역시 지금의 일을 사랑하게 됐다는 것이다.

비록 잘 나가는 작가는 아니지만

누군가와 경쟁하는 것이 아니라

좋아하는 일을 가능한 오래 하고 싶다는 것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때로 삶이 힘들게 할지라도
모든 것은 지나가는 것이니
믿어 보자, 기쁨의 날이 올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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