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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년만에 다시 찾은 가족

저는 친할머니 집에서 자랐습니다. 초등학교 1학년부터 6학년까지는 온전히 할머니 집에서 먹고 자랐고, 중고등학교때는 어머니와 할머니집을 왔다갔다하면서 살았습니다.


2004년, 제가 24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셨습니다. 폐암. 고작 50세.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친가와 외가가 멀어졌습니다.

저는 어머니와 함께 살며 할머니, 고모, 삼촌과는 멀어져버리고 말았습니다.

자세하게 적고 싶지는 않네요.


저는 곧 대학교에 복학했고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처음으로 뭔가를 열심히 했던 것 같습니다. 공부하는 게 그렇게 재밌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게 공부하다 회사를 들어가고... 또 일을 열심히 했습니다.

할머니 생각을 할 틈이 없었습니다.


어느새 시간이 얼마나 흐른건지.


건물주라는 것도 할만큼 경제적으로 여유가 생겼고, 회사를 그만두고 혼자서 앱을 만들며 지낼 정도로 시간적인 여유까지 생기니 그제야 할머니가 불쑥불쑥 떠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어떻게 지내고 계실까? 보고 싶다.


코로나 시절, 초등학교 때 살던 할머니 집 전화번호로 전화를 해본 적이 있습니다. 심장이 쿵쾅거리며 번호를 눌렀는데 없는 번호라고 하는 안내 멘트를 듣자 가슴이 철렁... 이제 다시는 볼 수 없는 건가?


돌아가셨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나이가 80세가 훨씬 넘었을테니.


그럼에도 몇 년 동안 계속 할머니 생각이 떠나질 않았습니다.

며칠 전 새벽, 식탁에 앉아서 작업을 하다가 또 할머니가 떠올랐습니다. 진짜 돌아가신건가? 살아있을 수도 있잖아. 돌아가셨는지 살아있는지 그것만이라도 알고 싶다. 내가 직계 가족인데 그걸 모른다는 게 말이 되나?


ChatGPT와 열심히 상담을 하면서 제적등본이라는 걸 떼면 된다는 걸 알아냈습니다.

그렇게 찾아본 제적등본에... 할머니가 있었습니다. 제 이름으로 떼는 게 아니라 돌아가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떼니 그제야 떼지더군요. 하다가 거의 포기할 뻔 했습니다.

할머니.png 1935년 생의 할머니

드디어 제적등본을 떼는데 성공하고 할머니의 이름을 본 순간 심장이 터질 것 같았습니다.

사망한 건가? 아닌 건가? 사망인지 아닌지는 어떻게 확인하는 거지?


...살아계셨습니다. 1935년 생.

할머니의 고향은 전라남도 해남이었구나. 그것도 여태 몰랐었네.

나이를 계산해보니 91세.


눈물이 펑 터져버렸습니다. 그렇게 눈물이 많이 흐른 건 오랜만이었습니다.

아내와 딸은 방에서 자고 있고... 거실 식탁에서 홀로 모니터를 보며 펑펑 울고 있는 다 커버린 중년의 아이.


더 이상 지체할 시간이 없다.

이번에야 말로 찾아가야 한다.


집 주소는 알고 있었습니다. 제가 군대에 있을 때 고모가 저에게 보내준 편지에 집 주소가 있었고 등기부등본을 떼어보니 여전히 살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거든요. 사실 코로나때 이걸 확인했었지만 찾아가볼 생각까지는 못하고 있었던 겁니다. 할머니가 살아계신지 아닌지를 모르니까.


며칠 후 드디어 마음을 먹고 할머니의 집으로 출발했습니다.

만날 수는 있을까? 만나게 되면 얼마만에 보는거지? 21년만이네.

만나면 무슨 얘기를 하게 될까? 돈 뜯어낼라고 찾아 온 것처럼 보이진 않을까?

문전박대 당하지는 않으려나? 그럼 할 수 없지. 키워주셔서 감사하다고 절이라도 하고 돌아와야겠다.

그래도... 혹시라도 따뜻하게 맞아준다면 정말 기쁘겠다. 그랬으면 좋겠다.


할머니와 고모가 사는 아파트에 찾아가서 초인종을 눌렀는데 아무도 없었습니다. 평일 점심이라 그런가?

이상하군. 91세의 할머니가 살고 있다면 집이 비어있질 않을텐데? 혹시 병원에서 지내시는 건가?

관리실에 가서 지금 살고 있는 사람이 맞냐 물어봤습니다. 확인해줄 수 없답니다. 경찰서에서 절차를 지켜서 오라고.

경찰서에 전화하니 도와줄 수 없답니다. 이산가족이나 찾아주는 거지 그런 경우는 도와줄 수 없다고.

하.. 어떡하지? 선물로 사간 음식과 함께 메모를 간단하게 적어 문고리에 걸어두고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돌아오는 길에 차 안에서 걸려온 모르는 번호의 전화...!


"여보세요"

"재호니...?"


삼촌의 목소리였습니다.

(삼촌이 그 집에 살고 있었고 잠시 나갔다가 들어오는 길에 메모를 보고 전화주셨습니다.)


어릴 때와 다름 없는 삼촌의 따뜻한 목소리에 차 안에서 또 한 번 펑펑 울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거의 대화를 나눌 수가 없을 정도로 울음이 터지더군요.

결국 다시 만나게 되는구나.


그날 할머니도 결국 만났고, 며칠 후 고모도 만날 수 있었습니다.

21년 전의 할머니를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제 잘 걷지도 못하는 할머니를 보며 세월을 그대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 마음이 어찌나 아프던지. 더 일찍 찾아왔어야 했구나.


그래도 용기내서 찾아가기를 정말 잘했습니다. 그러지 않았더라면 제가 죽을 때까지 후회하며 살았을겁니다.

저도 부모가 되어 딸을 길러보며 생명 하나를 키운다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제야 그 은혜에 대한 보답을 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며칠 전에는 할머니, 고모를 모시고 태안에 1박 2일로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어릴 때는 고모와 삼촌이 여행갈 때 저를 데려갔었는데... 이제 제가 모실 수 있게 되어 기뻤습니다.

할머니가 차 안에서 제 옆 자리에 앉아 노래를 흥얼 거리는 모습을 보는 순간 어찌나 행복하던지.


아마 올해는 다시 만난 가족들에게 제 시간을 많이 쓰며 보내게 될 것 같습니다.

20250528_130529.jpg 태안 파도리 해수욕장에서. 고모, 할머니와 함께.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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