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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말괄량이

유년의 기억(1)

by 바이너리


나는 어릴 적, 그야말로 괄괄한 말괄량이였다.

좁디좁은 단칸방에서 시작된 나의 세계는 항상 소란스러운 소리들로 가득했다.

그 속에서 나는 나를 만들고 있었다.


대로변 유료주차장 안쪽으로 들어오면 주차장 틈새로

손잡이도 없는 콘크리트로 되어 있는 계단이 있고,

그걸 밟고 1층 건물 높이 정도 올라오면 어떤 건물의 지붕이였을 큰 회색 마당과

마당의 끝에 지붕 둘레에 철근이 나뭇가지처럼 삐죽삐죽 튀어나와 있는 단칸방 주택이

나의 다정한 집이였다.




그때에는 집을 둘러싼 환경에 대해서 어떠한 의견이 없었는데,

지나고 보니 매일 저녁 쿵쿵 거리는 노래방 기계노랫소리와

술취한 아저씨들이 들락날락거리는 단란주점과

그 윗층에는 하얀연기가 수시로 피어오르고 튕겨져나가는 당구공 소리에

아~하며 아쉬워하는 소리가 멈추지 않던 당구장이 나의 이웃이였다.



당구장에서 열린 창문으로 얼굴을 내밀어 담배를 피우던 아저씨들은

우리집을 내려다 보기도 하고 가끔은 당구장 쪽 방향으로 나있던 창문으로

올려다보면 누군가의 눈이 마주쳐서 화들짝 놀라 숨기도 했었다.


큰 불투명 유리와 나무틀에다 갈색 페인트를 칠해놓은 출입문은

경칩에 자물쇠 하나 걸면 그게 보안의 끝이였던 연약한 문이였다.

그냥 유리 하나만 깨버리면 집으로 들어올 수 있는 대문.


그리고 10평 남짓되는 단칸방에 부엌과 욕실을 겸한 공간이 있었고

앞의 싱크대를 뒤로 하면 세탁기가 있던 정말 좁디 좁은 곳에서

엄마는 우리들과 아빠에게 줄 음식을 매일 만들었다.





화장실은 주인집 할아버지네에 붙어있던 공용 푸세식 화장실이었는데

어린 나에게 그곳은 어둡고 더럽고 무서운 곳이었다가

신식으로 리모델링(그래봐야 쪼그려 앉아 볼일을 보고 뒤에 있는 줄을 당겨 내리는)한 뒤로는

그래도 망설임없이 갈 수 있는 곳이 되었다.


내 유년시절 기억은 7살 때부터 어렴풋이 드문드문 있다.

대로변 맞은 편엔 그 당시 핫플이었던 큰 대형마트가 있었고

그곳에서 나는 형광 초록색과 검정이 섞인 롤러 스케이트를 나의 생일선물로 받은 기억이 있다.

그때 받은 그 롤러스케이트를 앞마당에서 신나게 탔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한 걸 보면

그 생일선물이 나에게 큰 의미였던 것 같다.


그리고 나는 그때부터 내 친구들을 나의 집에 아주 순수한 마음으로 데리고 와

같이 놀기도 하였는데

나와 같이 아무 생각 없이 놀러왔던 아이들도 있었겠지만

대부분의 아이들은 자신이 살던 아파트와는 사뭇 다른 공간에 놀라기도 했던 것 같다.

그 아이들의 표정이 하나 둘 나에게 여운을 남기기 시작하면서

나에게도 무언가 남들과는 다른 점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때는 몰랐다.

그 불편한 세상이 나를 단단하게 만들고 있었다는 걸.



이 글은 브런치북 [삶의 번역]의 이야기 중 하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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