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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룻밤의 외박

by 바이너리

아마 초등학교 저학년 무렵이었을 것이다.


정확한 나이는 기억나지 않지만, 매일 등교길에 지나던 아파트 단지 안 놀이터에서 만난 친구를 따라

집까지 놀러 간 일이 있었다.


친구의 가족은 내 기억 속에서 너무나도 따뜻하고 다정한 사람들이었다.

처음 만나는 사람들이었지만, 나는 그들 사이에 함께 있고 싶었다. 그 가족의 일부가 되고 싶었다.


장난감을 가지고 놀다가 숨바꼭질, 역할놀이로 이어졌고, 결국엔 내가 주도해 재롱잔치까지 열었다.
친구와 친구의 동생, 나. 우리 셋은 공연을 준비하면서

어른들이 보면 얼마나 좋아할까 상상했고, 그 상상만으로도 즐거웠다.

그 어른들이 누구의 부모님이든 상관없었다.


어쩌면 나는 우리 부모님의 상황을 내가 바꿀 수 없다는 무력감 속에서,

어른들로부터 인정받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날의 대상이 친구의 부모님이었을 뿐이었다.


재롱잔치가 끝나고, 박수 갈채와 웃음 속에서 나는 현실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조심스럽게 물었다.


“여기서 자고 가도 돼요?”


친구 부모님은 “부모님께 허락받으면 괜찮다”고 하셨고, 나를 전화기 앞으로 안내해 주었다.


“여기 전화 써도 되니까, 한번 여쭤봐~”


그 짧은 한마디가 어린 나에겐 너무 어려운 숙제였다.
전화를 하면 나는 귀가 어두운 부모님에게 반드시 소리를 질러야 했고,

나는 그걸 이 낯선 사람들에게 들키고 싶지 않았다.
무엇보다, 그들이 내 상황을 알게 되는 것이 두려웠다.


그래서 나는 혼자 방에 들어가, 잠시 시간을 끌다 거짓말을 했다.


“엄마아빠가 자고 가도 된대요.”


그 말이 어떤 파장을 일으킬지는 전혀 짐작하지 못했다.


친구 부모님은 내 말을 그대로 믿었고, 나는 생전 처음으로 타인의 집에서 하룻밤을 보냈다.
그러다 모두 잠든 깊은 밤, 친구네 집 문을 경찰이 두드렸다.

잠결에 누구 손에 이끌렸는지도 기억나지 않는다.




내가 기억하는 건, 다시 나의 10평짜리 좁은 집에서 눈을 떴다는 것뿐이다.


밤늦도록 돌아오지 않은 나를 찾다 찾다 못한 엄마아빠는 결국 경찰에 실종 신고를 하셨다.


그 친구네 가족은 얼마나 황당했을까. 그리고 우리 엄마아빠는 얼마나 놀라고 가슴을 쓸어내리셨을까.



다음 날, 부모님은 그 일에 대해 나에게 아무것도 묻지 않으셨고, 나 역시 입 밖에 꺼내지 않았다.
하지만 그날 밤의 기분과 장면은 아직도 내 안에서 선명하다.



그때 나는 분명 사랑받고 싶었고, 어른이 되고 나서야 그 욕망이 얼마나 절실했는지 이해하게 되었다.

그날 나는 다시 현실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그 하룻밤은 나에게 ‘거짓말’이라는 첫 죄책감과,
사랑을 받기 위해 감춰야 했던 내 가정의 현실을 또렷하게 각인시켰다.


어른이 된 지금, 나는 그날의 나를 이해할 수 있다.


어쩌면 너무 일찍 어른이 되어버린 어린아이가
스스로의 마음을 그대로 표현하지 못하고 숨겨버린 날들 중 하나였고,
그 사건은 나에게 ‘진심을 드러내지 못한 채 살아간다’는 것의 시작이었다.


그리고 지금 나는, 그 감정을 하나씩 다시 꺼내어 말로 옮기고 있다.


왠지 지금 나는 내 인생의 언어를 다시 배워나가고 있는 중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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