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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등을 피하는 습관의 뿌리

정서적 방관

by 바이너리

엄마 아빠의 귀와 입이 되었던 나는 어린 나이부터 중재자의 역할을 했다.
그 과정에서 감정의 파도와 눈치를 동시에 경험했다.


한편으론 이런 역할에서 벗어나고 싶었지만,

또 한편으론 엄마아빠가 다른 사람에게 홀대를 받거나 의사소통이 되지 않아 부당한 대우를 받으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항상 따라왔다.


그 위에, 어른들에게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덧입혀졌다.
그들 사이에서, 마치 내가 어른이라도 된 듯 행동하고 말하기 시작했다.



“어우, 어쩜 얘가 이렇게 참하고 어른스러워요.”
“부모님이 잘 키우셨네. 이런 애면 어디 내놔도 걱정 없겠다.”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도 나에게 거는 기대가 컸다.


다른 사람들에게 무시당하고 싶지 않았고, 선천적으로 승부욕이 있었던 나는 공부에서도 욕심을 냈다.

성적도 나쁘지 않았다.


“네가 집안의 기둥이야. 나중에 동생이랑 부모님 잘 보살피려면 지금 공부 게을리하면 안 돼.”
“넌 커서 꼭 잘 될 거야.”


이런 말들은 겉으론 사랑과 격려였지만, 나에겐 ‘절대 실패해선 안 된다’는 압박으로 다가왔다.


나는 ‘착한 아이’로 보이기 위해 연기를 했고,

그 과정에서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무엇을 싫어하는지, 내 감정이 어떤지조차 모른 채 성장했다.


모두가 자기 의견을 내놓는 자리에서, 혼자 조용히 수긍하면 모두가 편해진다고 믿었다.
그렇게 내 행동과 사고의 기준은 남에게 맞춰졌다.


결국, 내 옆에 누가 있느냐에 따라 나라는 사람도 크게 요동치는 기분이 들었다.


학창시절과 대학 시절은 말할 것도 없고, 사회생활에서도 나의 ‘정서적 방관’은 이어졌다.


그러다 결혼생활에 들어서자, 그 문제가 더 이상 숨겨지지 않았다.

부부란 매일 부딪히고 대화해야 하는 관계임에도, 나는 그 순간을 참아내고 넘기는 선택을 했다.

그리고 불만을 상대에게 떠넘겼다.


삶의 주도권을 타인에게 맡긴 채, 현실을 마주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제야 조금씩 깨닫는다.
늦었지만, 나는 내 언어로 내 감정과 생각을 표현하는 방법을 배우는 중이다.
부딪히면서, 넘어지면서, 다시 일어서며.


그리고 이제는, 나를 억눌렀던 관계와 사건들을

당신 “때문에”가 아니라, 당신 “덕분에”라고 부를 수 있도록 살아가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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