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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타리 안이 아닌, 울타리였던 아이

어른들 사이의 중재자

by 바이너리

나는 어릴 적부터 키가 컸다.
유치원 졸업앨범을 보면, 내 옆 친구들보다 머리 하나쯤은 더 커서
툭 튀어나온 혹처럼 보이기도 했다.


나는 그 유별남이 싫었다.
진짜 혹처럼, 떼어내 버리고 싶었다.
또래보다 눈에 띄는 큰 키,
그 키가 나를 좀 더 빨리 어른 아이로 만들어 준 것 같다.


부모님은 청각장애가 있었고,
시장, 병원, 은행 같은 일상 공간에서
사람들과 마주하면 상대방의 말을 자주 알아듣지 못하셨다.


“예? 예?”


되물으시는 부모님께
상대방은 바쁜 기색을 숨기지 않고 언짢은 말투로 말을 반복하곤 했다.

하지만 같은 크기의 말로는 부모님의 귀에 닿지 못했다.


결국 대화는 끊기고,
상대는 미간을 찌푸린 채 돌아서기 일쑤였다.

어느 순간부터 나는 그 사이를 메우는 사람이 되었다.


부모님이 먼저 말을 걸면,
상대방의 대답을 내가 부모님께 전달하고,
부모님의 반응을 다시 그 사람에게 전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귀가 좀 어두우니 크게 말씀해 주세요”
그 한마디만 있었어도
대화가 좀 더 부드러웠을까 싶지만, 부모님은 그 사실을 타인에게 말하기 어려우셨을 것이다.

그렇게 나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중간자의 말투를 배웠다.



어른들의 예민한 말, 감정 섞인 표현들, 갈등을 조율하는 단어들까지 내 몫이 되었다.

그런 날은 밤에 잠자리에 누우면 말로 표현되지 않는 억울함이 올라왔다.
슬픔도 같이 따라왔다.



왜 나는 울타리 안의 아이가 아니라
부모님의 울타리가 되어야 했을까.



친구들은 천진하게 노는 나이에 나는 어른이 만든 감정을 정리하고 있었다.


하지만 동시에, 나는 ‘말의 힘’을 배웠다.
표현이 얼마나 사람을 살릴 수도, 무너뜨릴 수도 있는지 깨달았다.


대학교를 지나
지금은 직장에서
나는 타인의 감정에 먼저 반응하고, 먼저 읽어낸다.


그 이유가 무엇인지 이제서야 알게 되었다.


내 감정을 있는 그대로 표현해 본 적은 거의 없지만,
남의 말을 대신 전달하는 일엔 오래도록 익숙했기 때문이다.


지금 나는 기억의 파편을 하나씩 되새기며 글로써 내 목소리를 번역하고 있다.
그리고 조금씩 내가 나로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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