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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정에 시작되는 그들의 하루

그들의 우직함

by 바이너리

우리 엄마 아빠는 청각장애가 있다.


두 분은 외할머니, 외할아버지께서 다니는 교회의 집사님 소개로

맞선을 보셨고 마음이 잘 맞으셨는지 결혼까지 골인 하셨다.


가끔 본가에 가게 되면 꺼내 보는 앨범에는 신혼여행 당시의 사진도 있는데,

젊고 풋풋한 엄마 아빠의 연애를 조금이나마 짐작할 수 있었다.


장난기 많은 아빠와 쑥쓰러워하지만 그게 싫지는 않은 엄마의 사랑스러운 표정.


이런 신혼생활을 2년동안 보내고서 나를 가지게 되었고,

4년 후에는 여동생을 가지게 되었다.


종종 막내들이 듣는 소리겠지만, 아빠는 나를 마지막으로 더는 자녀계획이 없었다고 한다.

하지만, 우리는 네식구가 되었고 엄마 아빠는 생계를 위해 본인들이 할 수 있는 일로

신문배달을 선택했다.



아주 어릴 때에는 신문배달을 하는 부모님이 그리 신경 쓰이지 않았지만,

점차 자의든 타의든 친구 부모님들의 직업을 알게 될때마다

왜 그렇게 주눅이 들었을까.

그 당시 어린 나의 눈에도 부모님이 일하는 모습이 힘들어 보이고,

녹록치 않아 보였기 때문이였을테다.



새벽 12시 언저리에 일어나 새벽 5시~6시까지 배달하고 집으로 퇴근해서는

고된 노동에 찌든 땀을 씻어내고 밥을 차려서 나와 동생을 깨워서 같이 아침 식사를 하셨다.


우리가 등원 또는 등교를 하면, 그때서야 엄마, 아빠는 대낮에 때 늦은 잠을 주무셨고

다른 이들이 잠들 때 깨어나고 다른이들이 깨어날때 잠드는 생활을 아직까지도 이어가고 계신다.



사실 밤12시에 깨어나는 게 장애가 있든 없든 어려운 일인데,

엄마와 아빠는 12시에 전화벨을 알람으로 맞춰놓고 그들이 듣지 못하면,

나와 동생이 듣고 엄마 아빠를 깨울지언정 그 약속을 어기지 않으셨다.


솔직히 나는 그 알람을 듣고 짜증내며 엄마아빠를 깨운 적도 많았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 노동에 대한 절박함이 부모가 된 내 마음을 콕콕 쑤신다.


사회인이 된 내가 부딪히는 노동환경은 정규직이나 비정규직이냐,

임금 인상률이 올해는 몇 퍼센트냐 하는 문제로 노사대립 하기 일쑤인데,


우리 부모님이 부딪히는 현장은 일을 할 수 있냐 할 수 없냐라는 더 처절한 환경이였다.


더군더나, 야외에서 하는 일이기 때문에 천재지변에 영향을 많이 받았다.


여름이 오면 태풍이나 장마로 배달일이 원래보다 더 늦게 끝나기도 하고

신문이 젖어서 고객들에게 클레임을 받기도 했다.

갑자기 불어난 도로 위의 빗물이 엄마 아빠를 힘들게 만들었다.


겨울이면 도로에 얼은 얼음으로 아빠가 타고 다니는 오토바이가 미끄러질뻔 하기도 하고

실제로 걷다가 미끄러져 어깨를 다치신 적도 있다.


나는 아주 어릴 적부터 부모님을 위한 기도를 많이 했다.


내가 아닌 남을 위한 기도가 그렇게 간절할 수 없었다.


기도 중에 눈이라도 떠지면 나의 간절함이 헛게 될까봐 질끈 감고 주문을 외우듯 엄마아빠의 안녕을

비는 기도.


그럼에도 불구 하고 엄마와 아빠는 일을 쉬지 않고 할 수 있어서 감사하다고 말씀하신다.


본인들에게 주어지는 일에 감사하고 그 일을 충실히 해내는 것.


그 우직함이 나와 동생을 엇나가지 못하게 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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