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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투명 유리 뒤의 얼굴들

내가 가지고 있는 성격에 대하여(2)

by 바이너리

IMF가 터진 해, 내 7살의 세계는 갑자기 흔들리기 시작했다.

아빠는 그 주차장 맨 오른쪽 구석에 있던 신문배달보급소에서 엄마 몰래 아저씨들과 도박을 했다.


물론 그때의 나는 아빠가 몰래 도박을 하고 있다는 걸 알지도 못했고

이미 일이 점점 커져 아빠는 사채를 쓰면서까지 도박에 참여 했고

엄마가 이 사실을 알게 되면서 집안 분위기는 험악해져 갔다.


그때 엄마아빠의 벌이는 어느정도였을까?

지금의 내가 생각했을 땐, 생활 꾸려나가기도 힘들었을텐데 아빠는 왜 그런 선택을 했을까. 그

런 아빠를 보면서 엄마는 얼마나 마음이 무너졌을까.

그때의 나의 기억은 연속적이진 않지만 사건사건이 기억에 남아있다.

예를 들면, 엄마와 아빠가 이야기 하면서 아빠가 화내면서 전화기를 집어 던진 장면과 엄마가 우는 모습이나 엄마가 아빠 데리고 오라고 해서 담배냄새 퀘퀘한 보급소로 들어가 아빠~ 하고 부르면 엄마한테 좀 있다가 간다해라 했던 장면.


그리고 그 당시 우리집엔 산지 얼마 되지 않은 통돌이 세탁기가 하나 있었는데

사채업자들이 추심을 했던지 드라마에서나 보던(내 입장에서는 어? 내가 예전에 봤던거네? )

자주색 딱지들이 그 세탁기에도 붙고 우리집에 있던 모든 쓸만한 것들에는 다 붙어 있었다.


무엇보다 나에게 제일 공포 스러웠던 건, 전화벨 소리와 무작정 집으로 찾아오는 낯선사람들이였다.


앞서 설명 했듯이, 우리집 현관문은 큰 유리와 나무로 되어 있었는데 밖에서 볼때 잠금장치에는 항상 자물쇠가 걸려 있어서 얼핏 보기에는 문을 잠궈놓은 것처럼 보였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빠에게 돈을 빌려준 사람들은 우리집을 물어물어 알아내어서 집 앞까지 찾아왔었는데 불행 중 다행이도 유리는 불투명하게 되어 있어서 사람이 유리창 근처로 가지 않으면 밖에서는 안이 잘 보이지 않았다.

1710ede77241e27e8a226f654f0e498c.jpg 이렇게 아래쪽은 나무, 위쪽은 큰 유리였고 문 두개가 포개지는 지점에 못같은 넣을 수 있는 구멍과 바깥쪽에서 보이는 자물쇠가 있다.(출처: 6080추억상회)


하지만, 끈질기게 문도 두들겨보고 유리창을 들여다보기 위해 얼굴을 불쑥 들이미는 사람들은

엄마와 나와 동생이 숨소리도 내지 않고 인기척 내지 않는 그 노력을 확인해야만 발길을 돌렸고

아직도 그 하얀 불투명 유리에 사람 얼굴 형체가 불쑥 나오는 장면이 선명하다.

그리고, 몇몇 사람들은 집 전화로 전화를 해대면서 집 밖을 서성거리기도 했는데

그 전화벨 소리가 거의 공포에 가까웠다. 나를 뒤쫓는 것만 같은 그 벨소리.


더군다나 귀가 불편한 엄마아빠를 대신해 전화를 받았던 나는

거의 기계적으로 엄마아빠나 다른 어른들은 지금 집에 계시지 않는다고 말했었다.


지금은 그래도 많이 나아 졌지만 갑자기 울리는 전화벨소리는 나의 마음을 불편하게 만든다.

집 앞을 불쑥불쑥 찾아왔던 사람들이나 엄마아빠를 찾는 전화를 해댔던 그 어른들은

본인들의 돈을 못 받을 위기에 처하자 어쩔 수 없이 한 행동이였고

나는 채무자의 딸로서 어쩔 수 없이 당해야 했던 행동이였다.


하지만, 그 일들로 나는 마음 속 한켠에 불안을 키워갔고 전화벨소리,

그리고 가끔씩 꾸는 꿈 속에서 자꾸 낯선 사람들이 나의 집으로 침입하려는 내용의 불쾌한 꿈들로

나에게 나타났다.


엄마와 아빠는 그 일을 겪고 나서는 더욱 더 일에만 몰두하셨고

아빠는 피우시던 담배도 끊고 직장과 집 밖에 안 다니시는 자발적 아싸가 되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전의 아빠를 알던 사람들은 지속적으로 아빠에게 연락했고

엄마는 그 사실을 알고는 아빠에게 여러차례 화를 내셨던 것 같다.


암, 나같아도 아빠에게 불 같이 화냈을 것 같다.

눈덩이처럼 불어난 빚을 지고도 정신을 못 차린다면, 정말 가망없이 느껴졌을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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