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을 지금에 쌓는 일.
작가 50인이 뽑은 2019년 (2020년도) 최고의 작가에 선정되었던 황정은 작가님. 그의 책은 표지도 정갈하고 곱다. 황색과 녹색의 조합은 흙과 나무 같기도 하고 기쁨과 슬픔 같기도 하다고 느꼈다. 초록 빛깔의 슬픔이 더 많이 모여있는 책. 그래서 띠지가 아닌 양장본 표지는 모두 초록인 걸지도.
그녀가 들려주는 이야기들은 책을 다 읽고 난 뒤에도 바로 없어지지 않고 조용하게 주위를 맴돈다. 글자들이 약간의 온기 같기도 하고 적당하게 불어오는 기분 좋을 정도의 바람 같기도 한 문장들이 되어 파도처럼 밀려갔다 돌아오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에메랄드그린에서 시작해서 파스텔 라벤더까지 그 사이의 컬러가 근사하게 그러데이션 되어 있는 하늘을 바라보는 것 같기도 해서 멍하게 쳐다보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우리는 어딘가에서 떠밀려오고 다른 곳으로 휩쓸리다가 종종 제자리로 돌아오기도 하는 일들을 반복하다 보면 일생이 지나가버리는지도 모르겠다. 미워하다가 또 그리워하다가 다시 원망하다가 그리고 용서하다가 작가님 말대로 애정 하는 일을 멈추지 않고 나아가다 보면 그게 잘 사는 일이라는 걸. 작가님에 대한 색다른? 정보가 궁금하기도 해서 지식인에 황정은을 검색하니 작가님의 책 일부의 사진을 올려두고 누가 쓴 건지 아는지 묻는 사람들이 제법 많았다. 사람들의 취향은 제법이나 비슷하구나 하며 놀라기도 했다. 글의 힘은 역시나 너무 대단해서.
연년세세는 해를 거듭하여 계속 이어진다는 뜻이니 책을 통해서 우리는 가족과 삶에 대해서 생각하게 된다. 자식들을 위해 희생하는 엄마 이순일(순자). 괴팍한 성격의 아버지 한중언. 엄마를 닮은 첫째 한영진. 조용한 성격의 둘째 한세진. 막내이자 유일한 아들 한만수. 삼 남매의 중간인 한세진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정갈하게 차려놓은 식탁처럼 펼쳐진다. 특별하지 않아도 정성이 느껴지는 집밥 같은 글이 몸안에 들어오고 밥알들이 온몸 구석구석으로 흩어지고 소화가 되고 쌓이기도 했다.
어쨌든 책 속에서 한중언은 소리를 지르거나 물건을 던지는 등 그런 방식으로 감정을 표현했지만 순자는 어떤 상황의 대부분을 삼키는 편으로써 순자의 무표정한 얼굴을 보며 아이들은 자라났을 것이었다. 순자의 슬픔은 일정 부분 자식들에게 흘러들어 가서 고이고 크게 드러나지 않지만 어떤 웅덩이를 만드는 것 같기도 했다. 그 사실이 짙은 초록의 슬픔 같다. 부모의 과도한 희생은 이제는 당연하기보다는 진심으로 감사하지만 자식들에게는 떠안고 싶지 않은 내내 떨쳐낼 수 없는 부담이 될 수도 있겠다 싶었다. 물론 사랑해서이지만 적당한 거리라는 것이 우리에겐 가까운 사이일수록 필요한 법이니까. 개별적이고 사적인 영역과 시간이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비슷하게 주어져야 하는데. 세상은 우리가 원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지지 않을 때가 다분하게 있다고.
행복의 형식을 직접적으로 경험하지 못한 아이가 자라면 한영진처럼 자신이 원하는 것을 끝내 말하지 못하는 사람으로 자라나게 되어 버리고 마는 것을. 물론 부모나 형제의 입장에서는 한영진이 열명쯤 있다 해도 마다하지 않을 테지만 한 개인으로 봤을 때는 전혀 다르게 접근해야만 한다. 감정에도 다양한 경험이 필요하다는 지극히 개인적인 사실을 누군가는 이해해야만 한다고. 우리 사회는 첫째에 대한 기대가 높기 때문에 그에 맞는 거대한 짐이 한영진의 어깨를 무겁게 누르고 있었을 거였다. 정말 괜찮은데 정말로 아주 가끔만 못 견딜 때가 있는 하루가 평범한 하루 안에 숨어있다가 고개를 내밀면 멀리서부터 만들어진 파도가 다가오고 먼 곳에서 시작된 그것들이 우리에게 도착할 때쯤 파도는 점점 약해져서 그냥 잔잔한 물살이 되고 마는 거지. 하지만 어떤 파도는 그렇게 한영진 안에 우리 안쪽에 차곡차곡 쌓여가는 걸까. 그러다 그만 한영진에게 바다를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넓고 무궁하게 누군가를 포용하는 세계가 있다는 진실을 진작에 알려주고 싶다고 생각하며.
너 하고 싶은 걸
다 하고 살 수는 없어.
......
거짓말.
한세진은 한영진에 비해서는 제법 마음대로 사는 것 같아 보일 수도 있겠지만 언니의 그늘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고 그 사실을 누구보다 한세진 본인이 더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세진은 순자에게 더욱 잘하려고 노력하는 것 같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그래도 순자를 공감해주는 한세진이 있어서 진짜 진짜 다행이라고 생각했는데. 누구나 결핍을 껴안고서는 자신이 가진 나름의 방식으로 곁을 지켜내 간다는 걸. 나는 이장을 위해서 파묘하는 것을 본 적이 있지만 이제는 사회적 분위기도 그렇고 환경도 달라져서 누군가의 죽음을 땅에 묻는 일이 줄어들다 보니 파묘를 직접 접하는 일이 많지는 않을 것 같기에 여러가지 생각이 들었다. 이제는 나쁘고 좋고를 떠나서 가족도 제법 예전보다는 결속력이 해체가 되어서 누군가의 온전한 희생을 전제로 하지 않으니까. 아니 그래야만 하니까.
현명하고 덜 서글픈 쪽을
향한 진리.
하고 싶은 걸
다 하고 살 수는 없으니까.
책을 읽는 동안 생을 관통하는 예리하고 고혹적으로 아름다운 투명한 칼날이 아프지 않게 우리를 베어내고 우리는 삶의 쓸모없음을 적당히 덜어낸다. 작가님은 자꾸만 우리에게 거짓말을 한다. 아마도 제발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주체적으로 삶을 지켜내 달라고 하는 말처럼 들리는 건 내가 제법 반항적이기 때문인 걸까. 하지만 어떤 이들의 헌신이 있기에 가정과 가족이 유지되는 것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임에 그들에게 경의를 표하는 느낌도 들었다. 힘든 시절을 포기하지 않고 견뎌내 주어서 모두 고맙다고 작가님이 한복을 차려입고 우리에게 큰절을 하는 의식일지도 모르겠다. 덕분에 잊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가까운 이들의 당연하지 않은 배려를. 장편소설 연년세세는 황 작가님만이 가지고 있는 필름 카메라의 렌즈를 통해 들여다본 가족이라는 세계 같다. 현상하기 전까지는 어떻게 나올지 대략 짐작만 할 뿐인. 인화하고 난 뒤에는 사진첩이나 액자에 꽃아 두고 가끔씩 들여다보면 볼수록 시간이 흐를수록 추억에 대한 무게가 더해지는 만큼 제법 멋스러운 느낌의 사진. 가족이란 기쁘기도 하고 슬프기도 한 상처를 주거나 받기도 하지만 결국에 살아가는 이유가 되는 것도 가족임을. 누나들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지만 막내 한만수처럼 우리는 좀 더 스스로를 위해 현명하게 자신을 돌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그것이 결국은 어느 정도 가족을 위한 일임을. 우리는 우리를 응원하며 나아가고 그렇게 세상이 또 돌아가고 이어진다고.
그렇게 하지 않아도
삶은 지나간다 바쁘게.
......
울고 실망하고
환멸하고 분노하면서,
다시 말해
사랑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