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부터 허공.
보라색 치마를 입고 동네 여기저기에 자주 출몰하는 여자를 따라다니는 소설. 마을에서 누구나 알고 있는 그 여자를 아무도 모르게 응원하는 한 사람이 있다는 것은 그녀의 삶을 다른 방향으로 이끈다. 보라색 치마는 혼자 있는 걸 좋아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아이들을 좋아하고 생각보다는 평범한 여자라고 생각했었다. 우리는 비범함을 뛰어넘는 평범함에 끌리는 걸까요.
주인공은 노란색 카디건을 입고 다니며 보라색 치마를 착용한 그녀의 보편적인 생활을 위해 사람들의 눈을 피해 노력하고 결국 자신이 일하는 호텔에 그가 취직할 수 있도록 돕는다. 생각보다 호텔에서의 일을 잘해나가는 그녀를 보며 주인공은 뿌듯해한다. 남의 일에 무슨 참견이야라는 시선으로 볼 수도 있겠지만 누군가를 어설프게 돕는 주인공의 마음을 모두가 이해할 수는 없을 테지만 그래도 그 둘의 사이가 발전되어 가는 모습을 우리는 가만히 숨죽이고 지켜봐야 할 것만 같다 독립영화를 보듯이.
중편소설 정도의 두께로 대사나 문장들이 길지 않아서 가볍게 읽기에 좋은 책 같다. 내용도 생각보다 심오하지는 않아서 길을 걷다가 우연하게 친구를 만나는 것 같은 가벼운 마음으로 읽을 수 있을 정도다. 절반쯤 읽었을 때 이렇게 생각했는데 보라색 치마는 생각처럼 순조로운 인물이 아니었다. 얄미울 정도로 무표정하게 일탈을 반복하는 보라색 치마의 일상을 노란색 카디건을 입은 주인공이 가만히 따라간다. 왜 어떤 액션도 취하지 않는 거지 달려가서 머리를 쥐어박으란 말이야. 하지만 어떻게 살던지 간에 보라색 치마의 인생은 그녀만의 것이고 누구도 중재를 할 순 없다. 의뭉스러운 보라색 여자에 대해 더 이상 이야기를 하기에는 스포가 돼버리기 때문에 이쯤에서 그만두기로. 가벼운데 가볍기만 한 건 아닌 다 읽고도 이 찝찝한 기분은 뭐지. 하루도 아니고 한 삼일 정도 머리를 안 감은 기분. 얼른 다른 책을 읽어서 뇌를 헹궈내야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