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망고와 산미구엘 사이 어디쯤.
작가님의 에세이를 읽은 사람은 알겠지만 이 책을 읽고 나면 여자들이 대부분 앞다투며 장강명 작가님과 결혼하겠다고 할지도 모르겠다. 그만큼 우주까지의 매력과 지구 반대편의 마력을 가진 마성의 캐릭터 장 작가님. 본인의 줏대를 가지고 삶의 방향을 선택하고 그에 대한 확실한 믿음을 토대로 생을 이어나갈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다들 어느 정도 주어진 상황에 타협하며 적당하게 순응하며 살아가니까 작가님의 삶은 진정으로 소설 같다.
보라카이를 배경으로 한 여행 에세이라 보라카이 투어를 다녀온 사람이라면 크게 공감할 부분이 많은 것 같다. 해외여행을 많이 가보지 못한 내가 가본 손에 꼽히는 관광지에 보라카이가 있어서 다행이야. 화이트 비치와 선셋 세일링은 작가님도 나처럼 영혼까지 반하신 거 같아 괜히 흐뭇해졌다.
근데 한참 읽다 보니 표지도 눈에 익고 이거 예전에 읽었던 책이자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는 보라카이를 가기도 전이었고 크게 공감하지 못했었는데 같은 책도 시간이 흐르면 정말 다르게 느껴지는 거구나 새삼 느꼈다. 읽었던 책을 자꾸만 모르고 또 빌리고 알고도 다시 보고 하다 보니 다양한 분야의 책을 골고루 읽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건가 봐 나에게는. 비슷한 옷이 옷장에 가득인 것처럼.
산미구엘 맥주에 잠긴 보라카이를 떠올렸다. 다음번 보라카이 여행에서는 나도 온종일 취해있어야지 술이 호핑이나 스쿠버다이빙에 쥐약이라고 해도. 근데 보라카이는 2016년 겨울에 갔을 때는 배수시설이 너무 안 좋아서 힘들었는데 그 이후 공사를 다 마쳤는데 코로나라서 아무도 안 온다고. 그리고 관광객 때문에 몸살을 앓아서 2년인가 섬을 보호하기 위해서 관광객들의 유입을 금지시키기도 했었는데. 지금 가면 자연이 보존되어 더 눈부시게 예쁠 거 같아서 보라카이에 또 가고 싶어 졌다. 사람들이 여행을 선호하는 이유는 자연의 위대함에 한없이 초라해지고 멍해짐과 동시에 잡념에서 벗어나고 무한하게 멍 때리는 자유를 느끼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을 것 같다. 우리는 늘 물멍과 바다멍이 필요해. 산멍 숲멍 불멍까지. 사람들이 왜 이렇게 멍때리기에 집착하는지 알 거 같다 우리는 너무 과도해서. 작가님은 이미 멍 때리기의 중요성을 잘 알고 계시니 예언가 맞는거지 장교주님은 거의 나의 종교 수준.
왜냐하면
난 보라카이에서
5일 내내
술에 취해 있을 거야.
이 책은 장 작가님 결혼생활의 단면을 엿볼 수도 있는 책이기도 한데 작가님은 후회 없이 생을 이어나가는 사람이 아닐까 싶었다. 유튜브나 팟캐스트를 통해서도 작가님을 상당하게 지켜봤지만 우울과는 거리가 먼 캐릭터이신데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싫어하는 게 뭔지 잘 알고 계시니 인생을 대하는 태도가 당당하고 단단하며 유연하고 긍정적일 수밖에 없는 게 당연하다는 생각을 했다.
책에는 작가님의 자기님인 HJ에 대한 애정도 부담스럽지 않게 녹아있어서 좋다. 현실과 허구를 자연스럽게 넘나들 수 있기에 이 커플은 꽤나 낭만적으로 보였다. 억지스럽지가 않고 자연스러워서 천천히 물이 흘러가는 것을 보는 것처럼. 난 수영을 전혀 못하는 맥주병에 물을 진짜 무서워하는데 배영을 배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 위에 한없이 떠서 떠다니는 구름을 바라보는 하늘멍과 구름멍이 하고 싶어서. 그리고 스쿠버다이빙도 해보고 싶어 졌다. 좋은 사람들과 함께라는 명제는 역시 날 자꾸만 괜찮은 인간이 되고 싶게 만들어 버리는 게 문제라니까.
보라카이는 칼리보 공항에 내려서 까티클란 선착장으로 이동한 뒤에 밤에 타면 괴기 영화인 통통배를 타야 하고 숙소까지 트라이시클을 타고 또 한참을 이동해야 하지만 (지금은 전기차로 바뀌었다고 하니 세월이 흐르긴 흐른 모양이야.) 그렇지만 그럼에도 유혹되는 무언가가 있는 게 틀림없다. 아마도 그건 같이 여행을 떠나는 사람과의 분위기도 무시할 수 없겠지만. 오늘은 허구로라도 나를 그날의 보라카이로 화이트비치로 데려다 놓아야겠어.
행복을 느끼려면
알맞은 온도, 멋진 경치,
적당한 배부름이
필요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