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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느Yonu Nov 13. 2019

어디서나 남자는 여자의 환심을 사려하지만...

프랑크푸르트의 남자 A, 대실패


독일인 친구가 자기 대학교 친구들과 모여서 놀건데 같이 가자고 했다. 독일 대학생들은 어떻게 노는지 궁금했던 나는 족히 10살은 차이나는 어린애들 노는데 끼어가 보기로 했다.



우리에게 한강공원이 있다면 프랑크푸르트 사람들에겐 마인강변 있었다. 차이점이 있다면 배달음식이 없다는 것과 여기서는 지갑과 휴대폰 간수를 매우 신경 써서 해야 한다는 것. 그리고 한강 공원이 훨씬 크고, 무엇보다 화장실이 있다는 점이다.


친구와 내가 나타나자 그녀의 대학교 친구들은 내게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독일말로 말을 걸었다. 독일 사람과 나타났으니 나도 어련히 동양계 독일인이라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친구는 나도 알아들을 수 있게 영어로 "얘는 한국어랑 영어밖에 못해~"라고 했다. 그래서 그 후로 우리는 영어로 대화했다. 하지만 결국 이들에겐 모국어가 영어가 아닌 까닭에 대화는 자연스레 독일어로 흘렀다. 그래도 나는 재밌었다. 대화 내용은 하나도 알아듣지 못해도 그냥 관찰하는 것 하나하나가 재밌었다.


나랑 정말 다르게 생긴 그들의 눈, 코, 입 관찰, 다른 생김새에 기인하는 같지만 다른 표정 관찰, 지나가는 독일인 관찰, 저 팀은 아이들과 함께 나온 가족, 저 팀은 데이트하러 나온 연인, 저 팀은 온통 남자애들이네 이제 고등학생쯤 되려나? 손을 맞잡은 저 노부부의 모습은 참 아름답다. 등등


친구는 대화에서 소외되고 있는 내가 걱정됐는지 내게 귓속말로 "괜찮아?"라고 물었지만 나는 "나 완전 괜찮아, 지금 너무 재미있어"라고 답했다.  


마인강변 술집에서 다들 간단히 술을 마시고 일행이 더 왔다. 지금까진 온통 여자들이었는데 남자가 한 명 끼었다. 그는 자신을 제이라고 소개했다. 제이는 자랑스럽게 돗자리를 챙겨 왔노라고 했고 우리는 술집에서 나와 강의 반대로 향했다.


잔디밭에 돗자리를 깔고 앉았는데 내가 잠시 휴대폰을 내 옆에 둔 사이 제이가 "어어, 절대 휴대폰 그렇게 두지 마. 순식간에 사라진다."라고 경고했다. 아 맞다, 나 유럽에 있지.


잔디 밭쪽은 흡연이 매우 자유로웠다. 남녀 할 것 없이 담배를 맛있게들 태웠다. 그러다가, 우리는 한 무리의 남성들을 마주했다.


혹시 불 좀 빌릴 수 있어요?


독일어는 못 알아듣지만 이런 의미였던 것 같다. 제이가 그에게 라이터를 건넸기 때문이다. 그런데 라이터를 주고받으려 두 사람이 가까이 다가선 순간 둘은 갑자기 얼싸안고 반가워했다. 어두워 못 알아봤던 것일 뿐 알고 보니 둘은 안면이 있는 친구 사이였던 것이다. 이제부터 이 친구를 A라 부르겠다. A는 재빠르게 우리 일행을 스캔했다. 그의 얼굴에 일순간 화색이 돋았다. 그랬다. 우리 일행의 성비는 남 1 여 8. 얼근히 취해 보이는 A는 누가 앉으라 한 것도 아닌데 자진해서 우리 돗자리에 앉아버렸다. 그리고는 나는 알아들을 수 없는 독일어로 열심히 말을 이어나갔다. 그러나 그의 말에 호응하는 여성은 아무도 없.었.다.


암컷을 유혹하는 수컷 군함새 사진 출처=@animalplanet


그는 마치 암컷을 유혹하는 한 마리의 군함새처럼 한껏 자신을 부풀렸으나 수법이 하나도 먹혀들지 않았다. 무슨 조크라도 치는 모양이었는데 킬킬 웃는 이는 오직 A하나뿐. 나머지는 전부 심드렁.


이대론 안 되겠다 싶었는지 결국 제이가 A의 주의를 돌렸고 제이와 A가 말하는 사이 나를 제외한 여자 7은 왓츠앱 메시지를 돌려보며 킬킬대기 시작했다. 마치 한국의 여자애들이 보기 싫은 남자가 술자리에 끼어들었을 때 몰래몰래 카카오톡 메시지를 서로에게 보내듯이. 그런데 다른 점이 있다면 얘들은 아주 대놓고 핸드폰을 돌려보며 키득키득 댔다는 점이다. 너희들, 원래 이러니 아니면 취한 거니. 너무 대놓고 아닌가도 싶었지만 핸드폰을 돌려보며 움직이는 7인의 움직임이 마치 파도타기 하는 것 같아서 또 우스웠다. 메시지가 담긴 핸드폰이 오른쪽으로 가면 오른쪽으로, 왼쪽으로 가면 왼쪽으로 슈웅 슈웅 인간 파도타기.


제이의 중재로 A는 떠났다. 떠나면서도 정신을 못 차렸는지 A는 끝까지 남고 싶어 했다. 결국 A를 끌어낸 것은 A와 함께 있던 다른 남자 일행들이었다.


나는 나중에 친구에게 "아까 그 남자애가 뭐라고 말한거야?"라고 물었다. 친구는 대답했다.


몰라, 기억도 안나는 노잼 조크, 지 자랑. 빨리 좀 가지.


그녀는 입을 삐죽거렸다.


어디든 남자가 여자의 환심을 사고 싶어 하는 건 똑같구나 싶었다. 그리고 그게 쉽지 않은 것도 똑같구나, 다시 한번 체감했다. 재미난 관찰의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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