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밤에 나는, 지금 얼굴이 반절만 보이는 사진 왼쪽의 남자와 대화 중이었다. 그는 야간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여자 친구의 아버지가 건강이 위독해서 급히 가는 길이라고 했다. 우리가 대화를 나누는 동안 나는 머리가 길고 깡마른 남성이 쓰레기를 뒤지며 배회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그가 내게 다가와 "너 한국인이야?"를 묻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내가 맞다고 하자 그는 "나도. 서울"이라고 말했다.
한국인이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노숙자로 지내고 있다니 이게 무슨 일인가. 나는 그와 더 대화하고 싶었으나 그는 한국어도, 영어도 하지 못했다. 오직 독일어만 할 수 있는 데다 약간 약에 취해 보였다.
그는 말이 통하지 않는 나 대신 내 앞의 독일인과 독일어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요는 내가 쓰레기를 뒤지며 살고 있는데 담배 하나만 달라는 것이었다.
독일인 총각은 그에게 담배를 나눠주는 것을 전혀 아까워하지 않았다. 담배를 말아서 피우는 사람들이 많은 곳 유럽. 그는 손수 담배 마는 것을 도와주기까지 했다.
그를 보며 문득, 그가 입양아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디까지나 내 추측이지만 예전에, 한국에서 입양 보내져 외국에서 살면서 그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한국에 돌아와도 한국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입양인들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본 적이 있다. 독일 사람들은 보통 영어를 잘하지는 못해도 어느 정도는 하는데, 오직 기초적인 영어 Are you Korean? Me too. Korea. Seoul. 만 구사하고 그 외에 내가 던진 영어 질문에는 전혀 답변을 하지 못하는 것을 보니 그의 독일에서의 삶이 순탄치만은 않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추측이고. 나는 그의 사연을 모른다. 나의 불온한 상상만큼 그의 인생이 불행한 인생이 아니기를 나는 진심을 다해 바라고 있다.
그래도 같은 한국인이라는데, 돈이라도 조금 주려다가 돈을 주면 약을 살까 봐 가지고 있던 도넛 몇 개를 주었다. 그는 연신 고개를 끄덕끄덕하며 고맙다고 고맙다고 냠냠 잘 먹었다.
부랑자에게 돈 대신 음식을 주는 것은 내가 시애틀에서 배운 것이다. 내가 부치지 못한 편지에 등장하는 그 시애틀 로컬이 가르쳐준 것인데 보통 돈을 주면 음식 대신 약을 사는데 소진해버리는 경우가 많으므로 대신 음식을 사주는 것이 낫다고 했다. 잠시 그가 생각나는 순간이었다.
어쩌면 지금도 프랑크푸르트 암 마인 역 근처를 떠돌고 있는지 모르는 그. 부디 그에게도 새 삶의 기회가 찾아올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