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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느Yonu Aug 27. 2019

공항에서 만난 슬로바키아 그녀

베를린은 무척 더웠다. 공항에서 비행기를 기다리며, 더위에 지친 나는 한국에서 사간 오천 원짜리 손선풍기를 꺼내 들었다. 그런데 내 맞은편에 앉아있던 아주머니가 내 손선풍기를 보더니 신기하다며 깔깔거렸다. 나는 피곤했고, 지쳤기에 그냥 같이 웃고 말았다. 컨디션이 좋은 상태였다면 아마 그녀와 신나는 대화를 시작했겠지만 나는 정말 피곤했다.




드디어 시작된 보딩. 내가 탄 항공사는 보딩패스 확인 후에도 승객들을 계속 세워뒀다. 철로 된 사각 울타리 안에서 비행기를 기다리는 사람들을 보며 마치 우리 안에 갇힌 동물이 된 기분이었다. 왠지는 모르지만 우리 안에 갇힌 돼지가 떠올랐다. 그런데 뒤에서 누가 나를 툭툭 쳤다. 돌아보니 아까 그 아줌마였다. 아줌마는 열심히 내게 손가락질을 하며 저기 보라고 가리켰다. 보니 두 명의 독일인들도 손선풍기를 쓰고 있었다. 아줌마는 신기하다며 또 깔깔거렸다. 웃음이 많고 웃는 얼굴이 참 예쁜 사람이었다. 우리(?) 안에서 나는 심심했고 우리는 대화를 시작했다. 아쉽게도 아줌마는 영어를 그리 잘하는 편이 아니었다. 아줌마는 짧지만 열심히 나와 대화했다. 자기는 슬로바키아 출신인데 독일에서 결혼해 살고 있으며 1주일간 영국에서 친구들과 파티하고 슬로바키아로 2주간 부모님을 만나러 간다고 했다. 친구들 만나러 가느라 빡세게 준비했는지 온몸이 명품이다. 이 비행기는 저가 항공인데.


비행기는 매우 조그만했다. 기내에 짐을 실을 수 없어서 비행기 배에 짐을 따로 실어야 할 정도로 작았다. 아줌마는 자신의 자리에 앉았고 나도 내 자리에 앉았다. 당연히 자리가 같은 우연 따윈 없었다.


영국에 도착한 후, 비행기가 먼 곳에 착륙한 이유로 우리는 버스를 타야 했다. 혼잡한 버스 안에서 봉을 잡고 서있는 내 옆에 아줌마가 또 나타났다. 우리는 서로 봉을 잡다가 손이 닿을뻔했다 여러 번. “지금 날 만지는 거야?”하니까 아줌마가 또 깔깔 웃었다. 웃는 얼굴이 참 예뻤다. 이때도 딱히 아줌마와 동행할 생각은 없었다. 나는 너무 피곤했고 아줌마는 영어도 못하고…


혼잡한 버스에서 내려 공항 이미그레이션으로 걸어가는데 또 누가 뒤에서 툭 친다. 역시나 아줌마. 어떻게 이렇게 날 잘 찾아내는지. 아줌마는 연신 손짓으로 “같이 가 같이 가”했다.

      




한국 여권 소지자는 영국에서 EU 회원국 국민들과 같은 대우를 받는다. 아시아 국가로는 일본, 한국, 싱가포르만이 유일하게 이민국 검사관과의 대면 없이 EU 국민들과 프리패스로 영국에 입국 가능하다. 한 무리의 동양인이 비행기에서 내려도 중국인 무리는 맞은편의 기타 국가 여권 소지자 라인으로 가서 긴 기다림을 해야 한다.


아줌마가 그런 걸 알고 있을리는 없었다. 아줌마는 빠른 걸음으로 나를 데리고 무조건 EU 회원국 라인으로 걸어갔다. 그런데 EU 회원국 라인에도 두 종류가 있었다. 하나는 여권 소지자, 하나는 회원국 주민등록증 등 기타 다큐먼트 소지자. 아줌마는 분명 여권을 들고 있지 않았다. 그런데도 여권 소지자 라인으로 분주하게 걸어가는데 내가 멈춰 세워 설명해주려 해도 아줌마는 영어를 못했다. 그리고 많이 들떠있었다. 결국 아줌마는 영국인 직원에서 “여권 비소지자는 저쪽으로 가서 통과해야 합니다 맴”이라는 말을 들었고, 순식간에 가방에서 여권을 꺼내더니 “패쓰포트! 패쓰포트!” 하고 손을 흔들었다. 동작이 참 빠르다.


우리는 여유롭게 여권 스캔 한번 사진 한번 찍고 나왔다. 아줌마는 연신 “엑시트 엑시트”하고 외쳤다. 나는 일단 내 짐을 찾아야 했지만 영어를 못하는 아줌마가 출구 찾는데 어려움을 겪을까 봐 출구를 찾아주고 “바이 바이”했다. “난 짐을 찾아야 해”라고 말해도 못 알아들을 것 같아서 웃으며 바이 바이 했다. 아줌마는 “응? 너 어디가?”하는 표정을 지었으나 내 발걸음이 빨랐다.


안녕, 유쾌한 슬로바키아 아주머니. 그 웃음은 아직도 기억이 나요.



안녕- 손선풍기의 인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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