떡볶이가 언제부터 좋아진 걸까(1)

7월 9일 AM 8:50

by 라일라

누군가가 제일 좋아하는 음식이 뭐냐고 묻는다면 0.0001초의 고민도 없이 대답한다.

“떡볶이요!”

그럼 상대는 다른 질문을 건네 온다.

“어떤 떡볶이가 좋아요? 밀떡? 쌀떡? 엽떡? 신전?”

음.....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이다. 떡볶이는 그냥 일단 다 좋으니까. 물론 그중에서도 취향이란 건 분명히 있지만(참고로 난 엽떡파다.) 밀떡이라 좋고 쌀떡이라 싫은 차이가 아닌

밀떡이라 아주 많이 좋고 쌀떡이라 많이 좋고 정도의 차이라 할 수 있다.

그럼 또 물어온다.

“떡볶이는 언제부터 그렇게 좋아했어요?”

“그러게요. 그냥 언제나 떡볶이는 제일 좋아하는 음식이었는데, 저도 잘 모르겠어요!”

라고 답을 한 후 고민해 봤다.


그러니까, 내가 떡볶이를 언제부터 좋아한 걸까?


떡볶이에 대한 나의 첫 기억은 1988년, 8살로 거슬러 거슬러 올라간다.

그 당시 삼송동에서 잠깐 살았는데 내가 살던 집은 밭으로 둘러싸인 가운데 좁은 흙길을 따라 들어가면 아주 작게 서 있는 단칸방이었다.

6살 끝무렵 아빠가 운영하던 공장에서 큰 불이 났고 우리 가족은 도망치다시피 삼송동 단칸방으로 이사하게 된 것이다. 나중에 엄마는 흘리듯 얘기했는데 단칸방마저도 지인의 도움이 없었다면 힘들었을 아주 어려운 때였다고.

금세 다시 서울로 이사 갈 줄 알았던 시간은 길어져 난 그곳에서 초등학교(그땐 국민학교였지) 입학을 하게 됐다.

검은색 고르덴 바지에 핑크색 재킷을 입고 핑크색 가방과 신발주머니를 들고 학교 갈 준비를 마치면 엄마는 내 손을 잡고 학교 앞 돌다리를 건너까지 나를 데려다주었다.

지금 생각하면 얼마나 자연친화적인 등굣길인가 싶다. 수업 준비물에 강아지풀이 있으면 엄마는 강아지풀을 뜯어주었고, 네 잎 클로버 찾기가 있으면 최선을 다해 네 잎 클로버를 찾다가 결국은 세 잎 클로버를 잔뜩 가져가기도 했다. 그때만큼 엄마와 오랫동안 손을 잡고 엄마의 체온을 느껴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엄마는 학교 앞도 아닌 딱 돌다리 끝에서 나의 옷매무새를 단정 시키곤 손에 100원을 쥐어주었다.

“친구랑 맛있는 거 사 먹어.”

엄마가 100원을 쥐어주면 바로 주머니에 넣지 않고 교실로 들어가 자리에 앉을 때까지 손에 꼭 쥐고 있다가 수업이 시작되면 주머니에 넣어놓고 쉬는 시간마다 확인했다.

‘내 100원을 잘 있나?’

어린 내가 보기에도 나에게 전해지는 매일의 100원이 결코 가벼운 돈이 아니었음을 알고 있었던 것 같다. (기억이 정확한지는 모르겠는데 당시 콘 아이스크림이 50원쯤 했던 것 같은데 물가 대비 8살 꼬마에게 100원은 그 자체로도 큰돈이긴 했다.)


8살의 나는 매우 숫기 없고 얌전한 아이였다. 원래 성격도 그럴뿐더러 이 곳은 내가 오래 머무를 곳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고 그런 이유로 친구 사귀기에 적극적일 수 없었지만 한 명의 친구는 또렷하게 기억에 남는다.

진숙이.

진숙이는 지금 말로 소위 왕따였다. 쉬는 시간엔 뭐하다 수업만 시작되면 화장실을 갔는데 아이들이 그 모습을 보고 쉴 새 없이 놀려댔고 심지어는 ‘진숙이한테선~ 지린내가~ 난대요~ 난대요~.’ 같은 요상한 노래를 불러대는 아이들도 있었다. 한 소절도 듣기 어려운 놀림을 (마치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듯) 태연하게 다시 화장실에 가고 돌아와 자리에 앉아있던 진숙이와 친구가 되고 싶었던 마음이 컸지만 소심한 8살 나는 그 마음만 꾹꾹 눌러 담았다.


등굣길은 돌다리를 건너가야 했지만 하굣길은 선생님의 지도에 따라 큰길로 돌아가야 했다.

차들이 지날 때마다 울렁이던 다리를 건너 주위에 밭이 길게 깔려 있는 아스팔트 길을 지나 골목 두어 개를 고불고불 돌아가면 우리 집이 있었다.

친구가 없던 나는 당연히 친구들과 맛있는 거 사 먹을 100원을 어디에 써야 할지 몰랐다. 그러니 항상 집에 갈 때까지 언제나 주머니 속에 넣은 채로 집으로 돌아갔다.

집 앞에서 마지막으로 ‘내 100원은 잘 있나?’ 손으로 한번 꼭 쥐어본 후 집에 들어가기 전 손바닥 냄새를 맡으면 쇳냄새가 진하게 배어있었다. 얼마나 만졌나 모른다. 내 100원이 사라질까 봐.

그러다 어느 날 차들이 지날 때마다 울렁이던 다리를 건너 밭이 길게 깔려 있는 아스팔트 길 초입에서 진숙이를 만났다.

아니 만났다기보다 나보다 20걸음쯤 앞서 걷고 있던 진숙이를 봤다. 길에는 아무도 없었고 괜한 용기가 생겨 진숙이를 불러 세웠다.

진숙이는 아주 천천히 돌아봤는데(진숙이는 모든 행동에 조금씩 느림이 있었다.) 보자마자

“어, 안녕? ㅇㅇ야.”라고 정확히 내 이름을 얘기하며 인사를 건네 왔다. 살짝 놀랐던 기억.

결석을 해도 담임도 모를 거라고 생각했던 나를 진숙이가 이름도 알고 있었다니.

진숙이에게 처음 한 말은

“우리 떡볶이 먹고 갈래?”였다.

“나 돈 없는데..”

“괜찮아. 나 100원 있어!”

엄마가 친구들과 맛있는 거 사 먹으라고 준 100원이 그제야 진짜 그 용도를 찾은 것 같은 기쁨이 들었다.

아스팔트가 시작되는 길 옆은 허허벌판이었는데 그곳엔 작은 컨테이너 박스가 하나 있었다. 외벽에 매직 글씨로 ‘떡보끼’라고 적혀 있는.

항상 가보고 싶었지만 혼자라 용기가 나지 않았던 일을 진숙이의 힘을 빌려 가보고 싶었었나 보다.

진숙이와 나는 처음 인사를 주고받고 처음 손을 잡고 떡보끼 가게로 들어갔다.

회색 컨테이너 외관에 겁을 먹고 들어갔는데 내부는 따뜻했다 같은 반전은 역시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