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자의 노력이 필요한 일(2)

pm 14:00

by 라일라

엄마는 평소 자신의 성격대로 집안 구석구석을 먼지 한 톨 남겨두지 않고 정리해 두었다.

다림질이 완벽한 상태로 걸려있는 블라우스,

적어도 일주일은 도시락 걱정 없을 만큼 정갈하고 예쁘게 담아놓은 반찬,

마치 새 이불을 펴 놓은 것과 같이 반듯하게 정리되어 있는 침대를 보고 있자니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엄마가 집을 나간 게 아니라 며칠 여행을 간 건 아닐까?

아빠와의 관계나, 여러모로 힘든 일이 쌓이고 쌓여서 혼자 훌쩍 그래 며칠 쉬기 위해 여행을 떠난 건 아닐까?

라는 착각이 들 정도였다.

마치 흰 눈이 소복이 쌓인 후 누구의 발자국도 지나가지 않은 것 같이 뽀송뽀송해 보이는 침대 이불 위로 메고 있던 가방을 내동댕이쳤다.

침대 끝에 털썩 걸터앉으니 책상 위 작은 메모지 한 장이 눈에 들어왔다.

엄마의 글씨.


‘미안해 딸. 엄마도 어쩔 수 없었어. 동생 잘 챙기고.’


엄마의 부재가 여행이길 바랐던 마음이 무참이 짓밟혔다.

당신들의 어쩔 수 없는 선택이 절대로 나를 무너뜨리게 두지는 않겠다고 그럴 수 없다고 자꾸 되뇌었다.

내가 날 보듬지 않으면 한 발자국 차이로 낭떠러지일 것 같은 아슬아슬한 불안을 떨칠 수 없었다.

괜찮다고, 나와는 아무 상관없는 일이라고 타이르는 마음과는 별개로 자꾸만 코끝이 빨개졌다.

아무도 보는 사람은 없었지만 눈물을 흘리는 일이 엄마와 아빠의 선택에 지는 것만 같아 눈물이 얼굴로 흘러내리지 못하도록 안간힘을 썼다.


철커덕.

소리에 깜짝 놀라 일어나니 벌써 깜깜해진 지 한참이나 지난 후였다.

아빠일까, 동생일까 방 밖에서 나는 소리를 가만히 듣고 있으니 맞은편 방문이 드르륵 열렸다 드르륵 닫혔다.

‘동생이구나.’

동생에게 엄마가 더 이상 이 집에 함께 살지 않는다는 것을 어떻게 전해야 할까.

아직 어린 동생이 그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엄마가 보고 싶다고 울거나 엄마를 찾아가겠다고 막무가내로 집을 나서면 어떡해야 하지?

같은 걱정을 잔뜩 안고 동생 방의 문을 조심스럽게 열었다.

동생은 그 사이 옷을 갈아입고 침대 위에 누워서 휴대폰을 만지작 거리고 있었다.

“저기.. 너도.. 예상은..... 했겠지만.. 엄마가..”

“알아. 아까 통화했어. 나 잘 거야 나가.”

동생이 모로 돌아눕는 걸 보고서야 나도 내방으로 돌아와 침대에 누웠다. 서운한 마음이 일었다.

엄마는 떠나면서, 마지막 인사를 누구에게 할까 고민하다 동생에게 전화를 건 것일까? 나에겐 동생의 돌봄을 부탁하는 쪽지 따위를 남기고?


아빠는 이틀 동안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

걱정이 되긴 했지만 따로 연락을 해 볼 용기는 나지 않았고, 다만 아빠만의 시간이 필요할 것이라 추측하는 정도일 뿐이었다.

이튿날 밤 아빠가 철커덕 문을 열고 들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동생도 나도 방 안에 있었지만 누구도 나가보지는 않았다. 아빠의 얼굴을 마주한다한들 서로에게 할 수 있는 말이 없다는 것을 뻔히 알고 있었으니까.


다음 날 아침, 여느 날과 다름없이 일어나 거실로 나갔는데 식탁 위에 검은색 비닐봉지가 하나 놓여있었다.

‘이게 뭐야?’

비닐봉지 안에는 은박지로 감싼 김밥 3줄이 있었다. 고소한 참기름 냄새에 몽롱한 정신이 반짝 들었다.

아빠의 출근 시간은 새벽이고

아빠는 엄마 없이 남겨진 다 큰 딸들의 아침을 챙기기 위해 깜깜한 동네길을 지나 김밥을 사 와 식탁 위에 올려두고

다시 깜깜한 길을 달려 출근했겠구나.

선 채로 은박지 김밥 한 줄을 모두 먹어버렸다. 나머지 두 줄은 동생이 일어나면 먹을 수 있도록 접시에 옮겨 담고 랩을 씌워 식탁 위에 올려놓았다.

서로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아빠와 나, 아빠와 동생, 나와 동생이 우리 가족이 함께 살기 위해 필요한 것은

각자의 노력이었다.

각자의 노력이 필요한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