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m 19:20
도망칠 수 있다면, 도망이라도 칠 수 있다면 그러고 싶은 생각으로 머리가 가득 차는 시절이었다.
무참히 버려진 것만 같은 기분에 휘청거렸고 감당할 수 없는 분위기에 주눅 들었다.
아빠와는 가족이라기엔 심적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나를 낳고 길렀겠지만 약 19년의 나에 관한 의사결정 대부분은 엄마의 의견이었고 엄마가 좋아하는 것이 내가 좋은 것으로 성립될 만큼 엄마’만’ 의지하며 살았다.
그런 엄마가 집에서 사라졌다.
정확히 얘기하면 나와 동생을, 자신이 선택한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결국은 견뎌내지 못한 사람에게 던져두고 집을 나갔다.
아빠와 엄마 간의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감지한 것은 1년 전쯤이었다. 걱정이라곤 어떻게 하면 야자를 빼먹을 수 있을까 정도인 나에게 엄마와 아빠가 나와 함께 살지 않을 수도 있겠구나에 대한 고민은 나를 압도하기에 충분했다. 큰소리가 오고 가는 날이 잦아졌고, 상대가 당장 눈 앞에서 죽기라도 바라는 것 같은 독한 말들을 서로의 가슴에 찔러 넣었다.
무력했다. 나는.
거실에서 큰소리가 들려오면 슬쩍 내 방으로 와서 옆에 바짝 붙어 손톱을 뜯고 있는 동생을 위해 방문을 걷어차고 나가 제발 좀 닥치라고, 제발 그만 하라고 악다구니를 지르고 싶었지만 차마 그 용기가 나지 않았다. 식은땀 가득한 손으로 피가 날 듯 제 살을 뜯고 있는 동생의 손을 꼬옥 잡는 수밖에.
엄마가 사라지는 일은 생각했던 것보다 순식간이었다.
티브이에서 보던 것처럼 이혼을 조정하는 누군가가 ‘엄마랑 살래, 아빠랑 살래?’의 질문을 하면 누구랑 살아야 할까를 고민할 필요도 없었고
엄마의 가는 뒷모습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나, 내가 따라 나가고 싶은 생각이 들면 어떡하지 같은 고민도 소용없는 일이었다.
어느 날 학교에서 돌아와 보니 안방의 화장대는 텅 비어있었고 행거 위의 옷들이 말끔히 사라진 것을 보고 알게 되었으니까.
‘이제, 이 집에 엄마는 없어.’
걱정되는 일은 거창한 것이 아니었다.
당장 내일 학교에 납부해야 할 급식비를 아빠에게 어떻게 말해야 하지?
점심 도시락을 어떻게 싸야 하지? 내 것과 동생 것을 싸려면 몇 시에 일어나야 하지? 그냥 빵 사 먹을까?
참, 교복 블라우스를 오늘 갈아입는 날인데 세탁기는 어떻게 돌리는 거지?
같이 지극히 일상적인 생활들의 처리에 관한 것이었다.
막 고3이 되었고 1년 노력의 양만큼 내 앞날이 결정지어질 수 있다는 막대한 긴장감 앞에 놓인 때였다.
엄마와 아빠의 일로 내가 피해받아서는 안 된다는 생각으로 나를 보호해야만 했다.
최대한 나의 일상을 무너뜨리지 않기 위해, 당신들의 일이 나에게는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적어도 난 책임감 없는 당신들과는 다르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더욱 의연해졌다.
‘나는 아무렇지 않아, 나는 아무렇지 않아. 나에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어. 괜찮아 괜찮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