떡볶이가 언제부터 좋아진 걸까(2)

7월 10일 AM 8:48

by 라일라

진숙이와 손을 꼭 잡고 들어간 컨테이너 내부는 조금 어두웠고 간단했다.

자세히 기억나진 않지만 떡볶이가 가득 담겨있는 널찍한 떡볶이판과 아주 작은 흑백 TV, 간이 테이블과 플라스틱 의자 2개가 전부였던 것 같다.

우리가 들어가자 TV를 보고 있던 아주머니는 고개를 스윽 돌려 말했다.

“아이고, 꼬맹이들 떡볶이 먹으러 왔어?”

밖에서 볼 때 무표정하게 TV를 보던 아주머니의 표정은 금세 말랑말랑해져 있었다.

그 표정을 본 후에야 나는 마음의 안도가 들었지만 정작 내 손에 쥐고 있는 ‘100원’으로 떡볶이를 사 먹을 수 있을까가 걱정되기 시작했다.

내부엔 떡볶이 가격이 적혀 있지 않았고, 엄마 없이 나 혼자, 아니 진숙이랑, 밖에서 음식을 사 먹는 일은 처음이었으므로 가격을 어떻게 물어봐야 하는지 막막한 기분마저 들었다.

아이들이 요상한 노래로 놀려대도 꿈쩍도 하지 않던 진숙이니까 아주머니에게 ‘떡볶이 얼마예요?’쯤은 별 일이 아니지 않을까 싶어 진숙이에게 마음을 의지할까 싶었지만

세상에. 들어올 때부터 꽉 잡고 있던 내 손을 피가 안 통할 정도로 꼬옥 더욱 세게 꼬옥 쥐고 있는 진숙이를 보며 떡볶이 가격을 묻는 건 내가 해야 하는 일이구나를 느꼈다.

침을 꼴깍 삼키고 최대한 당당한 척 아주머니에게 물었다.

“아줌마! 떡볶이 얼마예요?!”

내 목소리가 너무 컸거나 비장했을 거다. 진숙이도 느리게 날 쳐다보고 아주머니는 호호호호홍 웃음을 터트리셨으니까.

“100원에 10개!”

다행이었다. 생각해보면 살면서 그때만큼 다행이다,라고 생각한 순간이 얼마나 있었을까.

한쪽 손으로 주머니에서 쉴 새 없이 끊임없이 만지고 돌리고 만지고 돌리던 ‘내 100원’은 그제야 주머니 밖으로 나와 아주머니에게 건네 졌다.

“여기 100원이요! 10개 주세요!”

떡볶이 판 앞에서 대단한 거래를 마친 듯 큰 걸음으로 플라스틱 의자에 앉았다. 내가 의자에 앉는 걸 보고 진숙이도 느리게 걸어와 앉았다.

그래 봤자 어른 걸음으로 한 걸음이나 됐을까 싶은 거리였을 텐데 말이다.

컨테이너 안엔 작은 창이 하나 나 있었는데 허허벌판에 오도카니 서 있는 간이식 건물이라 그 창 밖으로 보이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조금 어두운 테이블 위로 얇은 햇빛 줄기가 비쳤다.


아주머니는 개구리 얼룩무늬 플라스틱 그릇에 비닐을 능숙하게 쓱 씌워 한 손에 들고 다른 손으론 떡볶이 판에 담겨있던 플라스틱 국자로 시간이 지나 붙고 엉켜있는 떡볶이를 휘휘 저었다.

떡볶이는 금세 국물을 먹고 다홍색쯤으로 제 색깔을 찾았고 김이 모락모락 올라왔다.

판에 담겨 있던 떡볶이는 그릇으로 옮겨졌고 아주머니는 우리가 앉아있는 자리에 떡볶이를 내려놓았다. 걸어가는 아주머니의 어깨가 오르락내리락했다.

우리 앞에 놓인 떡볶이는 정확히 딱 10개였다. 어묵 조각도 2개. 국물이 흥건하고 떡볶이 색깔이 조금 말간 그렇다. 요즘 말로 ‘국물 떡볶이’였다.

나는 포크 두 개를 들어 진숙이에게 나눠주고 떡볶이를 5개, 5개로 어묵을 1개씩 나눴다.

“진숙아 10개니까 우리 5개씩 나눠먹자.”

“그래 좋아.”

포크로 떡볶이를 찍어 먹기 직전 난 이제 완전히 어린이는 아니야라는 생각이 들었다. 친구에게 처음 말을 걸었고, 무서워 보이기까지 했던 떡볶이 집에 당당히 걸어 들어와 가격을 묻고 이렇게 지금, 떡볶이를 먹게 되었으니 말이다.

떡볶이를 본격적으로 먹으려고 하는 나와는 반대로 진숙이는 어쩐지 안절부절못하는 모습이었다.

“진숙아, 왜 그래? 떡볶이 못 먹어?”

아차 싶었다. 그제야 묻다니. 진숙이가 떡볶이를 좋아하는지 아니 어쩌면 못 먹을 수도 있는데 내 성공에 취해 그만.

“아니, 그게 아니고... 나 화장실 가고 싶어서..”

“화장실? 여기 화장실 없을 것 같은데 어떡해?”

떡볶이 성공에 취한 지 1분도 되지 않아 우린 또다시 걱정거리가 생겼다.

우리 얘기가 들렸는지(들렸을 거다. 그렇게 좁은 곳에서) 무심하게 TV를 보던 아주머니는

“문 열고 나가면 벽에 우산 있어. 우산 펴서 가리고 보고 와.”

조금씩 느린 진숙이는 그때만큼은 냉큼 자리에서 일어나 그렇게 빨리 걸어 나갔다.

진숙이가 없는 테이블엔 5:5로 정확하게 가른 떡볶이와 포크 2개만 남겨져 있었다.

음식은 누군가와 함께 먹을 때 더 맛있는 법이고 우리의 첫 주문 성공 떡볶이를 혼자 먹긴 싫었다. 진숙이를 기다리자.

시간이 한참이나 지나도 진숙이는 들어올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말랑말랑하고 달큰해 보이는 떡볶이 국물이 조금 졸아드는 걸 보고 도저히 참을 수 없어 떡볶이 한 개를 포크로 콕 집어 앙 베어 물었다.

아주 조금 맵긴 했지만 달달한 맛이 더 컸고 무엇보다 밀가루 떡의 쫀득함에 눈이 번쩍 뜨여 긴 밀가루떡을 호로록 삼켰다.

아예 맛을 보지 않았다면 모를까 혀에 떡볶이가 닿은 이상 나머지 4개를 그저 두고 보는 일은 8살 어린이에겐 너무나 견디기 어려운 일이었다.

떡볶이 하나를 먹고 포크를 내려놓고 진숙이를 기다린다.

또 떡볶이 하나를 먹고 포크를 내려놓고 진숙이를 기다린다.

또또 떡볶이 하나를 먹고 포크를 내려놓고 진숙이를 기다린다.

또또또 떡볶이 하나를 먹고 포크를 내려놓고 진숙이를 기다린다.

그렇게 먹다 보니 5개씩 나누었던 내 앞의 떡볶이는 0개가 되었다.

내 마지막 떡볶이를 다 먹었을 때 마침 진숙이가 다시 느린 걸음으로 들어와 자리에 앉았다.

“왜 이렇게 오래 걸렸어? 난 떡볶이 다 먹었어.”

“응 미안. 조금 오래 걸려.”

진숙이는 포크를 들고 자기 앞에 놓인 떡볶이 5개 중에서 2개를 내 쪽으로 밀고 3개를 제 쪽으로 가져갔다.

“너 2개 더 먹어.”

“왜? 내 건 다 먹었는데.”

“기다렸잖아. 난 3개만 먹으면 돼.”

나는 조금 고민하다가 달큰매콤한 떡볶이를 거절할 방법이 없어

“고마워. 잘 먹을게.” 같은 형식적인 인사를 보내곤 앙앙앙앙 맛있게 베어 물었다.

나의 첫 외식 떡볶이는 그런 맛이었다.


진숙이와 나는 학교 가는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매일 ‘컨테이너 떡보끼’를 먹었다.

우리가 들어가면 아주머니는 항상 “아이고, 꼬맹이들. 떡볶이 먹으러 왔어?” 인사해 주었고

한 개 더 주는 법도 없이 언제나 딱 10개의 떡이 담겨있는 그릇이 우리 앞에 놓였고

5개, 5개로 떡볶이를 나누고 내가 포크를 들면 어김없이 진숙이는 우산 화장실로 갔다.

내가 5개를 다 먹으면 진숙이는 돌아왔고 다시 2개, 3개로 떡볶이를 나누고 빠알간 국물만 남은 떡볶이 접시에 포크 2개를 내려놓고

우린 손을 잡고 집으로 갔다.


삼송동, 삼송 국민학교에서 1학년 한 학기를 마치고 방학이 되자마자 우리는 서울로 다시 이사하게 되었다.

방학 중이었고 진숙이를 만날 방법 없이 삼송동을 떠나게 되었다.

‘컨테이너떡보끼’ 아주머니에게도 진숙이에게도 안녕 우리 다시 만나자 혹은 감사했습니다 같은 인사는 전하지 못했다.

방학이 지나고 전학한 학교에서 시작된 새로운 2학기엔 컨테이너떡보끼도 진숙이도 없었다.


답을 찾았다.

내가 떡볶이를 좋아하는 이유.

처음 낸 용기의 맛이었고,

다행스러운 맛이었고

기다리는 맛이었고

달달 매콤 한 맛이었고

고마운 맛이었다.

그런 떡볶이를 어떻게 좋아하지 않을 수 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