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돌아온 엄마와 대야김치비빔밥
김장한 날에 수육만 먹었나요?
“이리 줘봐. 무채 내가 썰게. 손목 아프다면서.”
나는 엄마의 오른손에 엉거주춤 들려있는 칼을 조심스럽게 들어 내 발밑으로 가져다 놓았다. 나무 도마와 무도 썰기 편하게 자리를 옮겨주었다. 한 손에 잡히지 않을 만큼 크고 둥그스러운 무를 왼손으로 단단히 잡고 오른손으로는 칼을 힘 있게 잡아 쥐었다. 허리를 굽히고 체중을 최대한 실어 무 한 장을 썰어냈다. 칼의 단면에 잠시 붙었다 떨어진 무는 얇지만 적당한 두께를 자랑하며 나무도마에 찰싹 내려앉았다. 나는 그렇게 슬라이스 된 무를 가지런히 모아 종종종종 채를 썰기 시작했다. 모든 소리가 가라앉아 적막한 집에 칼질 소리가 경쾌하게 울렸다.
“딸, 가지런히 칼질도 잘하네.”
나는 엄마의 칭찬이 어색한 듯 목소리를 한껏 울려 내뱉었다.
“요즘 누가 채를 칼로 썰어. 채칼 있잖아 채칼.”
“그래도 칼로 써는 게 물도 안 생기고 맛있어. 나중에 김치 익으면 봐라. 확실히 맛이 다를걸.”
확실히.
나는 엄마의 단어를 나직하게 곱씹었다. 엄마의 목소리를 통해 듣는 단언적 성격의 어휘는 몇 번을 들어도 익숙해지지 않았다. 내가 기억하고 있는 엄마는 부드럽고 둥그러웠다. 엄마를 대하는 내 마음을 어색하게 만드는 건 부쩍 짧게 꼬부러진 머리카락, 군데군데 얕게 피어오른 검버섯이 자리한 얼굴보다 말 끝에 따라붙는 그런 단어였다.
“칼이나 채칼이나 비슷하겠지, 뭐 얼마나 다르겠어.”
나는 기어코 한 마디 덧붙이고 나서 나머지 무를 모두 채 썰었다. 하얀 무채가 소쿠리 가득 소복하게 쌓였다. 그 사이 엄마는 욕실에 숨 죽여 놓은 배추를 일일이 거실로 옮겨 놓고 있었다. 양동이를 내려놓고 일어날 때마다 엄마의 무릎에서 딱딱 소리가 났다.
거실 한 켠엔 엄마가 미리 만들어놓은 찹쌀풀, 절구에 다진 마늘과 생강, 흙 때를 말끔하게 벗은. 쪽파와 미나리, 푸른 갓이 놓여 있었다.
‘무릎이 아프지 않은 것이 이상하겠네.’ 생각하고 있을 때 엄마가 말했다.
“김장할 땐 남자 손이 필요해. 죄다 힘쓰는 일이거든.”
“그러게 김치 그냥 사 먹자니까 번거롭게 일을 만들고 그래.”
“오늘 하루 고생하면 1년이 든든한데 왜 사 먹어.”
“10년을 넘게 사 먹었는데 새삼스럽게.”
나는 생각나는 말을, 하고 싶은 말을 억지로 삼키지 않았다. 웅덩이가 패일만큼 큰 돌을 던질 생각은 없지만 엄마가 잔잔하게라도 상처 받길 바랐다. 엄마가 비워둔 10년 시간에 대한 보상을 어떤 방식으로든 받아야겠다는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는 만큼 옅어지길 바랐던 엄마에 대한 원망, 의문, 걱정 등의 마음은 오히려 그 색깔이 진해졌다. 농도 짙어진 마음을 체념하고 앞으로의 내 시간에 엄마는 없구나,라고 체념한 순간 나의 공간에 엄마가 불쑥 자리하게 되었다.
엄마는 현관문을 열고 들어와서 한참 동안 신발을 벗지 않고 서 있었다. 잠시 후 자동 센서등이 꺼졌다. 그제야 엄마는 신발을 벗고 가지고 온 작은 캐리어의 손잡이를 잡아 집 안으로 밀어 넣고선 외투도 벗지 않은 채 집구석 구석을 다니며 집에 달린 모든 문을 열어보고 불을 켰다 꺼보았다. 주방으로 가서는 물을 틀었다 잠갔다를 몇 번 반복하고는 싱크대 위아래 문을 차례로 열었다 닫았다.
‘누가 보면 집 보러 온 줄 알겠어요.’
가시를 잔뜩 박아 엄마에게 건넨 첫마디였다. 엄마의 행동을 멈추게 하기 위한 말이었지만 아는지 모르는지 엄마는 아랑곳하지 않고 안방으로 향했다. 조르륵 걸려있는 외투를 뒤적거리기도 하고 장롱 안의 서랍을 열어 가지런히 개어져 있는 양말과 속옷을 손으로 매만지면서 말했다.
‘엄마 닮아 손이 야무지네, 확실히.’
그 뒤로 몇 날 며칠 동안 엄마는 쉬지 않고 집 안의 모든 공간을 쓸고 닦았다. 어떤 날엔 장롱 안의 이불을 모두 꺼내 건조대 위에 널어 눅눅함을 날리고 있었고 또 어떤 날엔 싱크대 안의 그릇이 모두 나와 있기도 했다. 퇴근길 아파트 밖 깜깜했던 사각 박스의 내 집엔 아이보리 불빛이 켜져 있었다. 온전히 나 혼자만의 공간이었던 집에 엄마의 손길이 닿은 지 석 달쯤 시간이 지나서야 함께 사는 일에 조금 익숙해졌다.
집에 들어서자 엄마는 보고 있던 티브이를 끄며 말했다.
‘딸 고생했어. 저녁 먹자.’
“이제 뭐 하면 돼?”
“김칫소 만들어야지.”
엄마는 큰 고무대야에 꼬리꼬리한 액젓, 진득한 찹쌀풀, 마늘과 생강, 설탕, 매실액을 넣고 마지막으로 뻐얼건 고춧가루를 툴툴 털어 넣었다. 뻐얼건 고춧가루의 매운 기에 콜록콜록 기침이 나왔다. 엄마가 고무대야 속을 크게 휘저을 때마다 뻑뻑한 고춧가루는 차진 양념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간 한번 볼래?”
손가락 끝으로 새빨간 양념을 콕 찍어 맛을 보았다.
이상한 일이었다. 계량도 하지 않고 눈대중으로 큼직큼직하게 넣은 양념들이 한 데 모여 한 스푼만큼 모자라지도 과하지도 않은, 말 그대로 딱 떨어지는 맛이었다.
“엄마, 대충 하는 거 같은데 신기하게 간이 맞네?”
“맛이 괜찮아?”
엄마는 쑥스러운 듯 슬쩍 웃고는 소복하게 쌓여 있던 무채, 쪽파, 미나리, 갓을 양념장 위로 쏟아부었다.
“이제 조물조물 야무지게 버무려봐 봐.”
차지고 빨간 양념을 채소들 하나하나에 색깔이 베이도록, 하지만 채소의 숨이 가라앉지 않을 정도로, 어깨가 뻐근해질 때쯤 김칫소가 완성되었다.
엄마와 나는 작은 대야 하나씩을 다리 사이에 끼고 앉았다. 그리곤 새빨간 김칫소를 한주먹 크게 떠서 대야에 철퍼덕 던져 넣었다. 절임 배추 한쪽을 집어 대야로 옮겨와 왼손으로 배춧잎을 잡고 사이사이에 김칫소를 정성스럽게 문질렀다. 하얗고 노랗던 배추가 점점 새빨개졌다.
나는 며칠 전 티브이에서 김장 김치 담그는 장면을 본 것이 문득 기억났다.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올림머리를 한, 얼굴이 퉁퉁하고 말투가 조근조근한 요리연구가가 김장김치 담그는 법에 대해 설명하는 프로그램이었다. ‘배춧잎 사이에 김칫소를 넣고 마지막 배추 겉잎으로 보자기 싸듯이 야무지게 돌려 감아서 통에 넣으시면 돼요.’ 요리연구가의 설명이 떠올라 겉잎으로 배추 끝 쪽을 동그랗게 감싸 모양이 흐트러지지 않게 고정시켰다.
“이렇게 하는 거 맞아?”
엄마에게 완성된 배추를 내보이며 물었다. 내심 뿌듯한 마음도 함께.
“확실히 엄마 닮아 손이 야무지네.”
나는 엄마의 말을 못 들은 척하고 배추를 통에 담았다. 이미 통 안에는 3개의 새빨간 배추가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누군가 실수로 통을 떨어트린다 해도 흩어지지 않을 것처럼 단단하고 예쁜 모양들이었다. 배추를 반으로 가른 단면이 위쪽으로 오도록 하여 조심스럽게 보자기 같은 배추를 내려놓았다.
엄마와 나는 말이 없었다. 높게 쌓여 있는 배추를 대야로 가지고 와서 양념을 발라 통 안에 차곡차곡 빼곡하게 채우는 일에 열심이었다.
그러다 문득 한 공간에서 거리낌 없이 적어도 1년 동안 함께 먹을 음식을 만들고 있다는 사실이 새삼 어색해졌다. 엄마도 나와 같은 마음이었을까, 이내 대화를 건네 왔다.
“저녁은 뭐 먹을까?”
오래전이긴 하지만 세 식구가 복닥거리며 살던 시절, 김치를 담그고 나면 엄마는 항상 대야에 묻어있는 양념장에 갓 지은 냄비밥을 넣고 슥슥 비벼주었다. 보자기 같이 꽁꽁 싸매진 김치에 포함되지 못한 배추 겉잎들도 죽죽 찢어서. 그럼 아빠, 나, 엄마는 대야 곁에 한 자리씩 차지하고 앉아 수저로 밥을 크게 뜨고 김치를 척 얹어서 볼이 터지게 수저를 밀어 넣었다. 매운 김치와 뜨거운 밥이 입안에서 불을 내는 것 같았다. 밥을 다 먹고 난 수저를 대야에 던져 놓을 때쯤 엄마는 냄비밥에 눌은 누룽지를 보글보글 끓여 한 그릇씩 주었다. 그게 그렇게 따뜻하고 고소했다.
“엄마 우리 대야에 밥 넣고 비벼먹을까?”
“그럼 냄비밥을 해야겠네.”
엄마도 잊지 않은 우리의 기억이 반가웠다. 뜨겁고 매운 대야김치비빔밥 먹을 생각에 내 손은 더욱 바빠졌다. 적어도 1년은 함께 먹을 음식이 생겨서 든든한 마음도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