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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당탕탕 혼유여행4

국제미아

by nara

결국 정신없어 보이는 기차역으로 돌아왔다. 기차역에는 유일하게 24시간 하는 작은 맥도날드가 있었다. 나처럼 오갈데없는 사람들이 그 안에 붐벼서 쉽게 들어갈 수 있는 정도가 아니었다. 처음에는 운좋게도 자리 하나를 발견했었다. 음식을 주문하는 상황이었는데 가방을 두고 나올수가 없어서 고민하다 뺏겨버렸다. 한국처럼 마음 편히 가방을 두고 다닐 수 없다는 사실이 불편하기 짝이 없다. 그 이후 두 명의 외국인이 나에게 짐 맡겨달라 부탁하고 화장실을 다녀오기도 했다. 나도 그렇게 할 걸 후회했다. 사실 배터리도 없었고 외국인에 대한 두려움도 이유라면 이유다. 들어가자마자 사람들 사이에 들어가 햄버거와 티를 주문했다. 워낙에 주문한 사람들이 많아서 여기서 골라준대로 주문했어야 했다. 내 생애 처음 본 가장 빈약한 작은 햄버거였다. 그리고 뜨거운 물과 티백을. 자리에 앉을 수도 없어서 티백을 넣지도 못했다. 물을 엎지를 것만 같았기 때문이었다. 뜨거운 물을 시킨 이유는 손을 녹일려고 주문한 거였는데 하필이면 온도가 전혀 안느껴지게 쓸데없이 잘 만든 종이컵이었다.


문 안쪽에 들어와 문 바로 앞에 서있었다. 사람들이 자꾸 들어왔다 나갔다를 반복해서 바람이 들어왔다. 그래도 밖이 아닌 것만으로도 감사했다. 무장정 계속 서 있을 수만은 없었다. 문 앞이어도 문앞에 앉기를 시도했다. 자동문이 자꾸 열리니 등을 기댈 순 없었지만 그래도 앉을 수 있다는 것 또한 감사해야겠지. 시간이 좀 지나자 안쪽 구석에 있던 사람이 나갔다. 그 구석탱이 자리에 내가 바로 들어가 앉았다. 캐리어가 없는 현재 상황으로는 귀중품 이외에 목베게와 안대가 있었다. 에어 목베게에 공기넣어 방석삼아 앉았고 안대를 꼈다. 아무리 안대를 껴도 바깥 상황이 시끄러워서 눈에 선히 보이는 듯 했다. 오늘도 자는 건 틀렸다. 다시 구글을 켰다. 그래도 구글에는 갈 수 있는 열차가 있다고 나온다. 다시 헛된 희망을 품고 다시 열차 다니는 쪽으로 가보았다. 쓸쓸히 바람소리 밖에 안들리는 고요한 기찻길이었다. 투명 엘레베이터 안으로 추위를 피한 사람들과 눈이 마주쳤다. 스트레칭을 했다. 아까 한껏 웅크리고 앉아있었다. 그리고 열이 나면 이 앞에서 계속 기다릴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전광판에는 독일어로 된 큰 글자가 써있었다. 사진찍어 번역해보니 이 곳에 다니는 열차는 없다는 뜻이었다. 독일어 방송이 내내 나왔는데 그 뜻도 열차가 안다닌다는 방송이었다. 핸드폰 배터리가 자동으로 꺼졌다..이제는 뒤셀도르프에 사는 친구랑도 연락이 안된다. 받을 수 없었던 채팅방에는 날 걱정하는 친구의 문자가 쌓여갔다. 화장실을 가보았더니 자물쇠로 채워져있다.

'여긴, 한국이 아니라고..'

이곳에서는 당연한 일이다. 왜 자꾸만 한국식으로 생각하는 건지.. 문제가 생기면 항상 다른 방법이 있으니까 괜찮다고 생각했었는데 이제는 마땅한 대안책이 없어보였다. 모든 것이 다 내 뜻대로 잘될 거라는 착각을 갖고 있었다. 많은 후회 속에 상상을 했다. 만약 내가 공항 안에 계속 있었더라면, 근처 숙소를 찾아 머물러 있었더라면, 비행기표를 다른 날로 예약했더라면, 가방 속에 둔 내 방한장비들을 다 착용하고 비행기를 탔더라면, 내 생필품들 작은 에코백에 넣어두었더라면, 작은 선크림이라도, 충전기라도,. 그랬더라면..그랬더라면..


또다시 맥도날드로 돌아갔다. 아까 바글바글했던 사람들은 어디로 갔는지 다 빠져나가고 의자에 앉은 사람들만 있었다. 모두들 펭귄처럼 가만히 눈을 감고 잠을 자고 있었다. 다행히 그 중 한자리가 비어있었다. 앉아보니 앞에 어르신이 핸드폰을 충전하고 계셨다. "충전기 빌려주실 수 있나요?" 이분은 콘센트를 빌린다는 뜻으로 알아들으셨나보다. 그래서 손가락을 그걸 가리켰고 할머니는 충전기를 빌려주셨다. 사실 독일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다 알테지만 이곳 여성 어르신들 말투가 시크하다. 그래서 툭 던지는 어조에 또 기가 죽었다. 그래도 충전기를 빌려서 너무 너무 다행이었다. 긴장감이 풀려서 그런가 구글맵을 보고 있을 때 갑자기 눈물이 왈칵 앞을 가렸다. '제발. 울지마.. 울면안돼! 멈쳐.' 아무리 속으로 외쳐도 한번 시작한 울음이 그치질 않았다. 나도 모르게 서러움이 있었나 보다. 드라마처럼 또르르 이쁘게 울면 얼마나 좋을까. 북받쳐서 "끄억.. 끄억.. 꺽 꺽..꺽..." 내가 우는 걸 외국인들에게 들키고 싶지 않았다. 안대로 눈을 가려 눈물을 닦았다. 콧물이 나서 코를 가렸다. 소리가 안나게 입을 가렸다. 눈, 코, 입, 다시 입, 코, 눈. 더럽지만 안대에 여러 기능이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아까 충전기를 빌려주신 할머니가 아주 시크한 목소리로 "그녀가 입을 막고 울고 있어." 생중계하는 소리가 정신없는 와중에 들렸다. 부끄러워서 아무도 안쳐다봤는데 왠지 그 안에 있던 외국인들이 다 나 때문에 깬거 같다.

(아주 오랜시간 지나고 이 글을 쓰기위해 타이핑하는데 그 때가 떠올라서 눈가가 다시 촉촉해졌다.)

내 앞에, 옆에 계신 남자분이 티슈 쓰라고 주셨다. 코를 쎄게 풀고 다시 주었더니 한통 다 쓰라고 가지라고 하셨다. 애써 진정시켰다. 가파랐던 호흡이 점차 느려지고 한숨으로 돌아왔을 때 티슈를 주셨던 독일분이 기다렸다듯이 나에게 이런 말을 하셨다.

"멈쳐진 기차 중에 여기있는 사람들을 위해 자리를 제공해준 곳이 있나봐요. 우리는 그곳으로 갈건데 같이 안갈래요? 당신이 준비되면 저희랑 같이가요. "


그 이야기를 듣자마자 난 괜찮다고 말하고 따라갔다. 기차에는 자고 있는 사람들이 있었다. 우리 무리는 괜찮은 장소를 물색하고 앉았다. 나는 외국인들과 마주보고 자는 것이 민망해서 바로 뒤 자리에 앉아 찌그러져 있었다. 다시금 눈물이 나기 시작했다. 그렇게 울다 지쳐 나도모르게 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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