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사람, 프란츠
눈을 뜨고 바로 핸드폰 시계를 보았다. 여섯시 몇십분쯤 되어있었다. '내가 잠들어 있었구나..'
창 밖을 바라보았다. 깜깜해보여도 어딘가 기차소리가 들리는 듯 했다. 가는 길이 나오는지 구글 맵을 켜보았다. 정보가 뜨긴 하지만 여전히 눈이 많이 쌓여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갈 수 있는지는 미지수다. 그래도 창밖을 바라보는 편이 마음이 편했다. 이 안에 있으니 곧 열차가 떠날 거 같은 기분이 들었고 마음에 안정감을 주었다. 게다가 기차 안에는 화장실도 있었다. 곧 어제 티슈를 준 남성과 충전기 빌려주신 할머니가 내쪽으로 오셨다.
남자분이 물으셨다."어디로 갈 예정이에요?"
나는 독일어를 알 일이 없기 때문에 구글맵에 써져있는 대로 "뒤.셀.도.르.프.." 한국식으로 말했다. 다행히 그분들은 바로 찰떡같이 알아들으셨다. "오~우~! 뒤sse 도f. 저분이랑 같이 가면 되겠네요." 할머니가 말했다. 다시 남자분이 이어 말하셨다. "저에게 계획이 있어요. 렌탈차를 빌려서 이곳을 빠져나갈 생각이에요. 제 차가 프랑크프루트 공항에 주차되어 있어요. 렌탈차타고 프랑크프르트에 이동해서 다시 제 차로 갈아탄 후 당신을 뒤셀도르프까지 태워다줄 수 있어요. 함께 갈 동료들이 있고 그들 중에는 뒤셀도르프 가시는 분이 있으니 괜찮아요. 8시에 가게문이 열기 때문에 그 때까지 편안히 앉아있어요."
나야 완전 베리 땡큐지.. 감사하다고 말했다. 그리고 이런 갑작스런 상황이 얼떨떨했다. (지금 생각해보니 정말 멋있는 분이시다.)
나는 프란츠와 그리고 다른 독일인 3명과 함께 기차에 나와 이동을 했다. 그 무리 안에는 할머니는 없었고 다 독일 남성분들이셨다. 다들 나에게 친절한 미소를 보내주셨다. 괜찮다고. 안심하라는 뜻이었을지도 모른다. 날 도와준 독일남자는 가면서 물어보았다. "중국인이에요?"
중국인이냐고 묻는 이 질문은 독일에서 아주 일반적인 반응이라고 한다.
"아니요. 저 한국인이에요."
"이름이 뭐에요?"
"제 이름은 OO. first name O. last name OO."
"제 이름은 프란츠에요."
"프..란츠..?"
"맞아요. 프란츠."
통성명은 이렇게 끝이 났고 그 이후로 그의 이름을 불러본 적이 없었다. 이렇게 글을 썼지만 그 사람 이름이 프란츠가 맞는지는 아직도 헷갈린다. 처음엔 "프"로 시작하고 한국식으로 3음절 이름이라는 건 맞다. "프"로 시작하는 독일남자 이름이 뭐가 있을까 생각해봤을 때 프랑크, 프란츠 이렇게 밖에 생각이 안난다. 그 중 느낌이 제일 비슷한건 프란츠였던 것 같다. 프란츠는 나에게 프린스 그 잡채였다.
프란츠는 아직 시간이 많이 있으니 카페에 들리자고 했다. 프란츠가 먹을 빵과 마실걸 선택하라고 했다. 난 너무 고마워서 내가 사겠다고 그랬으나 프란츠가 괜찮다고 자신이 사주겠다고 하셨다..ㅎ 나는 커피를 못마시므로 티와 첫날 공항에서 맛있게 먹었던 프레첼을 기억나서 또 프레첼을 골랐다. 우리 무리는 카운터 옆쪽에 둥글게 모여서서 먹었다. 이상하게.. 정말 이상하게도. 어젯밤에는 외국인들이 무서웠는데 내앞에 서있는 독일인들이 하나도 무섭지가 않았다. 아마도 이 아저씨들이 날 무척 신경써주고 있어서(좋은의미로) 그런거 같다. 나는 프란츠랑 대화하고 싶었다. 하고 싶은 말은 많지만 영어를 못했기 때문에 이런저런 사정이 있었고 그래서 울었고 지금 너무 감사하고 잊혀지지 못할 거 같다고.등등 긴 장문의 영어를 번역해서 보여주었다. 프란츠는 또 미소로 고개를 끄덕이며 뒤셀도르프로 짐이 옮겨졌으면 친구네 주소를 공항에 알려주라고 말했다. 그럼 택배로 보내줄거라고 말하셨다. 그리고 프란츠는 다른 독일 사람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자기 아이들과 함께 본 기린 사진을 보여주었다. 어린 새끼 기린이었다. 기린이 너무 너무 귀엽다고 보여주며 자랑하셨다.^^
이제 우린 렌탈가게로 이동하기로 했다. 나는 다마신 컵을 카운터에다 도로 두고 나왔는데 같이있던 다른 독일인이 그 모습을 보더니 거리에 놔둬도 된다고 컵을 기둥 옆에 두는걸 나한테 직접 보여주셨다.ㅋㅋ
그 당시에는 몸이 지치고 빨리 가고 싶고 걱정이 많고 정신없는 상황이었는데 돌이켜보면 그런 하나하나가 나에게 소중한 경험이고 추억이었다. 그땐 내가 왜그랬을까 싶지만.. 과거를 붙잡을 수 없어서 아쉽기만 하다. 다시 돌아간다면 그곳에 계셨던 다정한 독일인들에게 내가 정말 잘 대해주었을 것 같다. 긴장되서 시종일관 무표정이었던 나였다..
밖을 나와보니 어제도 계속 왔던 눈이 푸딩처럼 쌓여있었다. 이런 눈은 내 생전 처음보는 눈덩이였다. 눈이 미웠지만 정말 이뻤다. 눈 때문에 같이 걸을 수 없는 상황인지라 프란츠 뒤엔 나, 그리고 다른 독일인이 일렬로 걸어갔다. 걷는도중에 이쁘다고 계속 핸드폰 사진을 찍었다. 내 뒤에 따라오는 독일인들은 그런 내 모습을 보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