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투갈의 바다 3. 알가르브, 파루(Faro)
8월에 문 여는 도서관을 찾는 나를 비웃었던 친구 T가 포르투갈 여름의 호된 바다 맛을 보여준다며, 자신의 본가인 파루로 초대했다. 파루는 포르투갈에서 가장 남부 지역, 알가르브의 중심도시이자 지중해 휴양지로 유럽인들의 사랑을 받는 곳이다. 파루 토박이인 친구에 따르면, 파루 공항은 한때 리스본 공항보다 더 이용객이 많았다고 한다. 리스본이나 포르투 등의 도시는 지금처럼 관광객이 많이 모인 게 10년 남짓 되었지만, 지중해를 끼고 있는 파루 및 알가르브 도시들은 제1,2차 대전 때부터 영국, 독일, 프랑스 및 북서 유럽인들의 사랑을 받는 휴양도시였다. 은퇴 후 아예 이민을 오는 사람들도 많다고 한다. 실제로 도착해보니 많은 가게들이 아예 영국인이 운영을 하거나, 외국인 관광객이 잘 이용할 수 있도록 되어있었다.
알가르브는 'Al-'이라는 아랍식 관사가 붙은 지명에서 볼 수 있듯, 포르투갈에서 가장 오랫동안 아랍인 무어족이 머물렀던 곳이다. 이슬람과 카톨릭 문화가 섞여있는 만큼 친구의 눈 색깔도 갈색과 초록색이 꼭 구슬처럼 섞여있다. 친구 말로는 알가르브 지역에 그런 눈 색깔을 가진 사람들이 꽤 있다고 한다. 중세시대엔 아랍인, 근대에는 포르투갈인, 현대에는 북유럽 및 서유럽인들이 모여 사는, 어쩌면 포르투갈에서 가장 외국인들이 많이 살았던 곳일지도 모르겠다.
첫날은 파루 구시가지를 구경하고 가까운 파루 해변으로 갔다. 해변으로 가는 길에는 다를 건너야 하는데, 좁은 1차선이라 해변으로 가는 차와 시내로 오는 차가 인내심을 갖고 순번을 기다려야 한다. 누구도 불평하지 않는다. 예전엔 이 '불평하지 않음'이 포르투갈인들이 성격이 좋아서 인 줄로만 알았다. 기다리는 내내 차 안에서는 인상을 쓰고, 짜증을 내고 한국인들처럼 똑같이 인간적인 모습을 보이지만, 아무도 그 불평을 행정적인 민원으로 끌고 가지 않을 뿐이었다. 다만 우리는 친구가 그런 교통사항의 불편함을 미리 알았기에, 멀찌감치 차를 세우고 다리를 도보로 건너갔다. 건너가는 길이 아름다워, 10분이면 건널 다리를 사진을 찍고 구경을 하느라 20분이 넘게 걸렸다. 친구는 그런 우리가 부끄러웠는지 빨리 가자고 재촉했지만, 우리는 "우리도 관광객이야!" 하며 멈추지 않았다.
다음 날은 다른 친구가 꼭 가보고 싶다며 베나질(Benagil) 동굴 투어를 하기로 했다. 그러나 극성수기의 알가르브를 너무 무시했는지, 이미 예약이 차고 없다고 했다. 아쉬운 대로 그냥 까르보에이루(Carvoeiro) 해변에서 놀기로 했다. 알가르브는 넓은 해변은 없고, 중간중간 동굴이나 큰 바위로 요새처럼 둘러싸인 작은 규모의 해변이 많았다. 대서양 바다와 물 색깔도 다른 것 같았다. 훨씬 에메랄드 빛이었다. 물 온도는 매한가지로 차가웠다.
한창 우리가 풍경에 빠져있을 때, T는 혼자 주위를 두리번두리번거리더니 말했다. "헤나따, 내가 여기서 유일한 포르투갈 사람인 것 같아." 아닌 게 아니라 그제야 돌아보니, 죄다 영국인, 프랑스인 아니면 독일인이었다. 피부가 하얗거나 아니면 빨갛게 익은 위쪽 유럽인들 사이에서 있었다. "나 여기 토박이인데, 하필 친구들을 가장 투어리스틱한 해변으로 데려오다니!" T가 조금 의기소침해 보였다. "괜찮아. 우리도 투어리스트잖아." 하며 애써 그를 위로(?)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