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물에 다친 청상추와 겨자채가 어느덧 먹기 좋게 자랐습니다. 쌈채소는 가장 신선하고 맛있으면서도 무럭무럭 자라 보는 맛이 좋습니다. 겨자채는 제법 겨자향이 톡 쏘는 게 맛이 잘 들었고 청상추는 밭에서 키웠음에도 아주 부드러워 샐러드로도 먹을 수 있겠습니다. 갓 딴 쌈채소들은 그대로 저녁에 삼겹살을 구워 부모님과 언니네 식구들과 우리 식구들이 잘 싸먹었습니다. 8명이서, 아 조카들은 아직 쌈채소의 맛을 모르니 고기와 밥만 먹었네요. 6명이서 고기 한 점에 서너 장씩 쌈을 싸먹었는데도 아직 넘쳐납니다. 역시 최소 몇 달은 기다려야 하는 작물들과 달리 쌈채소는 가성비가 최고입니다. 거의 2시간을 내리 쌈채소만 땄는데 제법 많아 여러 친지분들과 나눌 생각입니다. 처음엔 하나씩 땄으나 점점 요령이 생겨 한 번에 여러 장을 뜯으니 시간도 단축되고 힘이 덜 들었습니다. 중간중간 개미, 진딧물, 노린재, 이름 모를 갖가지 벌레, 심지어 송충이도 꿈틀꿈틀 기어 다녔지만 유기농이라고 생각하면 뭐 그럭저럭 괜찮습니다. 탈탈 털면 떨어져 나가니까요. 다만 너무 구멍 송송 내지만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
아참, 쑥갓과 아욱, 부추, 열무도 같이 땄습니다. 아욱은 아욱 된장국을 해 먹을 요령이고 쑥갓은 아주 향긋하고 부드러워 생으로 먹을 생각입니다. 지난번에 딴 부추가 아직 남아 부추는 가져오지 않았습니다. 열무는 고랑에 심었는데 지나다니기에도 영 불편하고 잘 자라지 않는 것 같아 아직 크지 않지만 다 따버렸습니다. 만져보니 야들야들한 게 지금이 제일 맛있을 듯합니다. 손에 한 아름 정도로 양은 많지 않아 우리 두 식구 먹을 열무김치만 담글 생각입니다.
비타민 채소, 적근대, 당귀, 고수는 아직 수확할 때가 아니어서 기다리고 있는 중입니다. 한 번에 다 따버리면 먹기도 전에 시들어 처치 곤란이니 잘 되었습니다.
어느덧 씨앗을 뿌리고 모종을 심는 시기는 끝이 나고 수확의 시기가 다가오고 있네요. 역시 기다리기 힘들 땐 하루하루 크는 재미가 있는 쌈채소가 제격입니다. 쌈채소라고 뭉뚱그리기에는 너무나 생김새와 식감, 향기가 달라 각자의 취향이 다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한국인이 아주 좋아하는 한입 가득 쌈을 만들 수 있다는 점에선 같고 저는 모든 쌈채소를 거의 공평하게 좋아하니 뭉뚱그려 쌈채소라고 하겠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향긋한 당귀를 넣은 쌈을 제일 좋아하고 그 외엔 거의 비슷하게 좋아하지만요. 누구나 다 최애 쌈채소가 있을까요? 아니, 쌈채소들을 다 구분할 수 있을까요? 전 직접 키우기 전까진 그냥 다 쌈채소라고 불렀습니다. 심지어 당귀조차도 이름을 모르고 '향긋한데 희한하게 한방 냄새가 나고 단풍잎 비슷하게 생긴 그거'라고 불렀을 정도니까요.
밭은 풍성했다가 대만 남아 볼품 없어졌지만 다음 주에 슬쩍 가보면 못 본 새 제법 예쁘게 자랐겠지요. 다다음 주엔 또 쌈채소를 한 아름 가져올 테고요. 다음번 수확 땐 비타민, 적근대, 당귀, 고수도 딸 수 있으면 좋겠네요. 아, 역시 시간 보내기는 밭일이 제격입니다. 두 시간이 쏜살같았고 모기 한방 물렸습니다.
p.s 텃밭 일기를 순서대로 쓰고 싶은 욕심에, 그리고 각기 특징을 담아 잘 쓰고 싶은 욕심에 계속 미뤄왔습니다. 일기는 미뤄왔으나 거의 매주 2~3회는 텃밭을 가꾸니 써야 할 일기는 점점 늘어나 부담만 가중되었습니다. 옥수수가 제법 자라 기분이 좋으면서도 쓰지 못한 텃밭일기가 조금 신경이 쓰였습니다. 우선 오늘 자 일기를 써봅니다. 내가 읽는 일기를 쓸지 남이 읽는 에세이를 쓸지 관찰, 체험을 통한 자료성 글을 쓸지, 키우는 작물을 소개할지 밭일에 쓰는 아이템을 소개할지 심지어 반말을 할지 존댓말을 할지도 아무것도 정해지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우선 썼습니다. 무엇이든 처음도 중요하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