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회사에 출근해서 점심을 먹고 양치를 한 후, 벌의 날갯짓보다 요란스럽게 회사를 벗어난다. 회사 정문으로 나와 왼쪽으로 200m쯤 직진하고, 다시 왼쪽으로 300m쯤 쭉 가면 내가 고대했던 길이 나온다. 도심의 빽빽한 빌딩 숲과는 어울리지 않는 아주 소담한 흙길이.
그 길의 이름은 ‘물길 따라 걷는 길’이다. 길의 왼쪽으로 양 팔 넓이 정도 되는 얕은 물이 흐른다. 물길과 흙길 사이에 풀과 나무들이 조화롭게 어우러진다. 물길 가까이에 길쭉하고 억센 풀이 뿌리를 내렸다. 흙길 가까이에 단풍나무, 느티나무, 참나무, 벚나무들이 뿌리를 깊게 내려 흙이 무너지지 않도록 도와준다. 나무의 울창한 잎들이 길 위로 그늘을 만들어 따가운 햇볕을 가려주기도 한다.
한낮의 강렬한 햇살이 물길을 비추니 물비늘이 일렁인다. 수많은 led 전등이 켜진 듯 눈부시다. 종종 나뭇잎이 동동 떠내려 오는데 그 모습이 별들 사이를 유영하는 우주선처럼 보이기도 한다. 반짝이는 물빛에서 벗어나 물 안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또 다른 광경이 펼쳐진다. 조약돌 사이에서 검은 물체가 현란하게 움직인다. 송사리 떼다. 떼를 지어 다니면서 여기저기에 활기를 뿌려댄다. 길을 따라 더 걸으면 물이 제법 많고 깊어진다. 물고기들도 수심에 맞춰 커졌다. 검지 크기의 오밀조밀한 물고기 사이에서 팔뚝만 한 잉어들이 팔딱인다. 오가는 사람들이 자주 먹이를 주었는지 내가 고개를 디밀어 그림자를 만들어내면 어느새 잉어들이 뻐끔뻐끔 주둥이를 내민다. 멈춰 서서 한참을 구경하다 다시 길을 따라 걷는다.
그렇게 점심시간마다 30분 정도 산책을 하며 몸도 마음도 휴식하고 돌아오면 오전 내내 회사에서 쌓인 스트레스가 한낮 여름날 아이스크림 녹듯 사라지곤 한다.
무더위가 가시고 가을이 시작될 무렵이었다. 식사를 한 후 어느 때와 같이 족제비한테 쫓기는 새앙쥐처럼 부리나케 회사를 뛰쳐나와 ‘물길 따라 걷는 길’로 향했다. 요 근래 어떤 날보다 날씨가 좋았는데 새들도 신났는지 유난히 종알종알 대었다. 새소리가 즐거워 산책을 하다 벤치에 팔베개를 하고 누웠다. 하늘을 바라보니 나무가 가지를 곧게 뻗어 햇빛을 가려주었다. 잎사귀 사이로 조각난 하늘들은 새파랬고 바람은 선선하게 불었다. 물은 졸졸졸- 흐르고 그 안에서 오리는 날개를 푸드덕거리며 몸을 씻었다. 나뭇잎은 바람에 몸을 맡기며 쏴아아- 소리를 냈다. 낮은 음 사이에서 새들이 소프라노 소리로 삐째째째삐짹-, 삐욕삐욕- 거렸다. 환상적인 하모니에 눈을 감고 발을 까딱거리며 비트를 맞춰주었던 그때, 툭.
툭? 배 위에 가벼운 진동이 느껴졌다. 확인해 보니 검붉은 자줏빛 둥그런 열매가 배 위에 덩그러니 있었다. 만져보니 뭉그러졌다. 새똥이었다. 똥을 싼 새가 버찌를 먹었었는지 내 흰 티셔츠는 점점 자줏빛으로 물들어갔다. 위을 쳐다보니 나뭇가지 사이로 잿빛의 직박구리가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저 새소리는 직박구리가 내는 소리였구나. 나는 엉거주춤한 자세로 회사로 돌아가 티셔츠를 빨았다.
고백하자면, 어안이 벙벙하면서도 묘하게 즐거웠다. 나는 살면서 새똥을 맞아본 적이 없었다. 점심시간에 벤치에 누워 사색을 즐기다가 맞은 자주빛 똥이라니. 이건 첫 새똥 경험으로써 아주 합격이다. 남들에게 적당히 툴툴대며 떠벌릴 수 있는 소소한 해프닝은 삶을 더 풍성하게 만든다. 점심시간은 새똥을 맞음으로써 황급히 종결되었지만 이로써 ‘물길 따라 걷는 길’은 나만의 ‘누워서 새소리를 감상하다간 자줏빛 새똥을 맞을 수 있는 길’로 확장되었다. 회색빛 삭막한 나의 회사 생활을 푸르게 해주었던 그 길. 자줏빛 물감을 섞어 더 알록달록해진 내 일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