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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자를 먹으며

(그림은 고흐의 감자 먹는 사람들)

by 민진

감자는 뜨거울 때 호호 불어가며 숟가락 가락으로나, 이손 저 손 옮겨가며 이까지 뜨거워지게 먹는다.


식으면 아리고 맛을 잃어버려서 다르게 먹는 법을 찾는다. 달걀을 삶아 감자와 으깨어 마요네즈에 섞어 식빵에 발라먹는다. 식구들이 즐겨하지를 않는다.


아이들에게 감자를 쪄 주면서 이 오덕 선생님의 『감자를 먹으며』를 얘기하곤 했다. 선생님의 시를 아이들이 읽기 쉽게 책으로 펴낸 것이다. 시가 훨씬 맛깔나며 나의 정서와 맞물린다. 선생님께서 우리말 살리기를 하려고 얼마나 애썼는지도 들려주었는데 기억이나 할까. 갓길이나 나들목은 선생님 때문에 찾아진 우리말이다. 해마다 하지가 가까워지면 감자를 삶는다. ‘이오덕 선생님의 감자 먹자’ 하면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네’ 하곤 했다. 꼭 이오덕 선생님 때문에 감자를 먹어야 하는 것처럼.


나는 식은 감자나 갓 쪄낸 것들도 다 괜찮다. 어린 입맛들은 따뜻할 때는 설탕을 찍어 먹어주다가도 식으면 도리질을 한다. 나중에는 시장에서 파는 것처럼 껍질을 벗기고 설탕과 소금을 넣어서 솥에 삶는다. 물이 졸아들면서 단맛과 짠맛이 알맞게 어우러지도록 나무주걱으로 뒤적거린다. 뽀얀 살이 포근포근 익으면 만나게 먹는다.


텃밭을 시작하면서 감자를 몇 해 심었다. 어느 해인가 늦장을 부리다 씨감자를 사지 못해서 그냥 감자를 사다가 심었다. 거의 수확을 못했다. 소독을 해서 나온 씨감자를 심지 않으면 병이 들어서 감자가 맺히지 않는다. 아쉬워서 이듬해 봄 씨감자를 넉넉히 사서 이 밭 저 밭 갈라 심으면 인심 좋은 시골 아낙이 된 것 같았다. 감자 꽃은 어쩌다 몇 개씩 피어나는데 흰색이거나 연보랏빛이다. 여름이 손을 내밀면 감자 줄기를 뽑은 뒤, 호미로 살금살금 두둑을 파헤친다. 보드라운 흙속에 알 같은 것이 숨어 있다. 크기가 다 다르지만 성큼성큼 얼굴을 내미는데 오달지다. 자루에 담아 와서 여기저기 나누어 먹는 기분이라니. 감자가 비싼 적은 별로 없다. 땅속에 숨어있던 알토란 같은 것들을 자랑하는 즐거움 이리라.

유월이 오면 엄마는 감자를 캐온다. 지금의 내 주먹보다도 컸다. 그것들을 씻어서 커다란 솥에 넣고 아궁이에 불땀이 좋게 불을 땐다. 뜸을 들여 솥뚜껑을 열면 누군가 감자에 칼집을 넣은 것처럼 금이 쩍쩍 가있다. 포실한 감자 살들이 하얗게 내다보는데 얼마나 팍신팍신하던지! 지금 아무리 감자를 잘 쪄보려고, 그때의 맛을 내 보려고 해도 되지 않는다. 동네 친구들과 평상에 앉아 먹던 맛 때문에 감자의 계절을 기다리는지도 모른다. 감자가 간식으로의 역할이 끝나면 옥수수가 익는다. 솥이 커서 그런지 엄마는 매번 두세 겹의 껍질째 삶았다. 그래야 맛있다고. 저녁으로 팥 칼국수를 먹고 나서도 하모니카를 불면 어느새 저녁시간이 가곤 했다. 매캐한 연기가 피어올라도 우리는 마냥 좋았다.


자야 될 시간이 가까워 오면 냇가로 목욕을 간다. 자그락거리는 자갈돌 위에 선녀들처럼 옷을 벗어 돌멩이를 눌러놓는다. 시원한 물에 오던 잠도 달아난다. 사위가 조용하니 물소리가 크게 들린다. 말소리가 줄어들고 눈만 빛났다. 초록의 나락들이 피워내는 짙푸른 흑색들은 반딧불이들이 밝혀주었다. 까만 하늘에서는 별들이 수도 없이 우리를 내려다본다. 꽁무니에 불을 켜는 몇 녀석들을 손안에 잡아들여 손등을 만든다. 새처럼 지절 대며 다니던 논두렁길이 아련하다.

식구도 줄고 감자를 찌면 굴러다닐 것 같아서 밥할 때마다 강낭콩과 감자 한 알 벗겨서 깍둑썰기를 하여 넣는다. 보기에 구황 밥 같았는지 뭣이여! 하던 남편도 맛을 보더니 괜찮은지 잘 먹는다. 여름이 다 가도록 감자밥을 해 먹을 것 같은. 비트를 찌면서 곁다리로 감자를 같이 쪄냈다. 그때의 맛이 아니다. 어렸을 때 먹었던 감자처럼 느껴보려 할 뿐. 이오덕 선생님의 시 ‘감자를 먹으며’를 읽으며 혼자서 감자를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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